‘FA이적 보상선수의 역사’ 1호 박충식부터 이형범까지

입력 2018-12-22 15:39

1999년말 KBO리그에 FA제도가 도입된 뒤 보상선수로 처음 이적한 선수는 박충식이다. 해태 타이거즈 이강철이 FA계약을 통해 삼성으로 옮겨오자, 해태로 가야만했다. 그로부터 2년 뒤 KIA에서 은퇴했다.

FA 도입 초기 꽤 이름있는 선수들이 보상선수로 포함됐다. 2011년 이전까진 FA선수 보상 규정은 직전 연봉 450% 혹은 직전 연봉 300%와 보상선수(보호선수 18명 제외) 1명이었다. 지금은 직전 연봉 300%와 직전 연봉 200%와 보상선수(보호선수 20명 제외) 1명을 선택할 수 있다.

2003년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SK 와이번스로 FA 이적할 당시 보상선수는 조규제였다. 1991년 세이브왕이었다. 조규제는 이적 이후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의 길을 가야 했다.

2004년 정수근이 두산 베어스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할 당시 보상선수는 문동환이다. 문동환은 두산으로의 이적 첫해인 4승에 그쳤지만 2005년 10승, 2006년 16승을 거뒀다. 보상선수 신화를 쓴 것이다.

2007년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할 때 보상선수가 이원석이다. 2009년 이진영이 SK에서 LG로 옮겨갈 때 보상 선수는 이승호였다. 2011년 KIA 타이거즈 이범호 이적 당시 보호선수가 한화 안영명이었다. 2016년 송은범이 한화로 갈때 보상선수는 KIA의 주축 선수가 된 임기영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4명이 보상선수로 팀을 옮겼다. 조무근이 황재균의 보상선수로 KT에서 롯데로, 최재원이 우규민의 보상선수로 삼성에서 LG로 옮겼다. 강민호의 보상선수로 나원탁이 삼성에서 롯데로 옮겼고, 유재유가 김현수의 보상선수로 LG에서 두산으로 이적해야 했다.

그리고 최근 두산 베어스 양의지가 NC 다이노스로 적을 옮기면서 이형범이 두산으로 이적했다. 이형범 외에 보상선수가 나올지 의문이다. FA를 통해 이적할 선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동환과 이원석 등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몇년 뒤 소리없이 은퇴의 길을 간 선수가 더 많다. 보상선수 규정은 FA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막는 구단들의 무기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