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사립유치원 갑질에 유치원 3법 혼선, 불안한 학부모들

입력 2018-12-22 05:00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는 21일 국회에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인천에서 5살 아이를 키우는 김모(36)씨는 요즘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다. 아이가 옮길 유치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원래 다니던 유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지자 폐원한다고 했다가 교육당국이 엄정 대응을 예고한 뒤 폐원 결정을 취소했다. 다른 유치원을 알아보던 김씨도 한 곳에 넣었던 입학원서를 철회했다. 하지만 며칠 뒤 “원아 수가 부족해 다시 폐원하기로 결정했다”는 통보 전화가 왔다.

김씨는 21일 “절대 폐원할 일 없다고 해서 믿고 있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며 “이제 모집 막바지 기간이라 자리가 남는 유치원도 별로 없는데 아이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사립유치원의 폐원 움직임이 세 달째 접어들면서 학부모들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유치원은 폐원 여부를 두고 며칠 간격으로 말을 바꾸거나 ‘조건부 정상운영’ 방침을 공지하는 등 학부모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비리 근절을 위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통과가 지지부진해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유치원 모두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새로 출범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에 대해서도 “한유총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많다.

학부모들은 원장이 유치원 3법을 언급하면서 폐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한다. 여야가 유치원 3법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지난 20일에는 강원도 원주의 한 유치원이 입학설명회를 열고 정상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유치원 원장은 이 자리에서 “유치원 3법이 불발돼서 정상운영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명회에 다녀온 한 학부모는 “법이 통과되면 다시 폐원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며 “그런 유치원에 뭘 믿고 아이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을 중의 을이 된 기분”이라는 한숨 섞인 소리마저 나온다. 입학 문의를 위해 전화를 걸면 다짜고짜 정부를 욕하거나 유치원 3법에 대한 학부모 의견을 묻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학부모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동탄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 김모(29)씨는 “원장 쪽에 몇 가지 불만을 제기하니까 다른 학부모들에게 ‘저 엄마는 정치하는 것’이라며 내 험담을 했더라”며 “원장이 갑자기 전화해서 할 말이 있으니 지금 유치원에 오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원장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매년 하던 학예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더라” “우리 아이가 피해 받을까봐 싫은 소리도 못한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출범한 한사협을 향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을 탈퇴한 지회장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사협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아를 최우선으로 두고 모든 결정을 내리겠다. 집단휴원이나 폐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유총과 달리 교육당국과 대립관계를 청산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도입에 대해서는 “현재 에듀파인은 사립유치원 실정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학부모 이모(29)씨는 “집단휴원이나 폐원은 어차피 불법이어서 한유총도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에듀파인 도입이 핵심이고 학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인데 반대하는 걸 보니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모(35)씨도 “(한사협은) 일부 사립유치원만 문제라고 했는데 학부모들 심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동네 유치원의 행태를 생각하면 곱게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