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스의 항구 도시 포트탤벗의 한 허름한 차고에서 지난 16일 새롭게 그려진 벽화가 발견됐다. 그림 속 아이는 혀를 내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맛보고 있다. 마냥 신난 모습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눈이 날아오는 곳을 따라 벽 모서리를 돌아보면 그곳엔 연기를 내뿜고 있는 불길이 있다. 아이가 맛보고 있는 건 눈이 아닌 하얀 잿가루였다.
거리예술가 ‘뱅크시’는 19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벽화를 직접 찍은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의 작품임을 밝혔다. 뱅크시는 지난 15~16일 포트탤벗에 방문해 그림을 그렸다.
뱅크시가 드론으로 촬영해 공개한 영상은 눈송이를 먹고 있는 아이와 옆 벽면의 화염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상공으로 올라간 드론은 멀리 보이는 공장을 비춘다. 공장 굴뚝은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영상에서 동요 'Little Snowflake(눈송이가 머리 위로 떨어져요)‘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뱅크시가 이곳에 벽화를 그린 계기는 한 남성의 요청을 받으면서였다. 개리 오웬이라는 남성은 “지난 8월 뱅크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포트탤벗에 작품을 그려 달라. 이곳의 철강공장은 매일 엄청난 양의 먼지를 뿜어내고, 주민들은 이로 인해 아파하고 있다”고 뱅크시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뱅크시는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포트탤벗에 벽화를 그려 응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벽화가 그려진 차고의 주인은 철강공장의 노동자 이안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당연히 낙서로 여기지 않았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혹시라도 작품이 훼손될까 두려워 밤을 새워 지켰다”고 말했다. 포트탤벗의회는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 차고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현지 언론은 뱅크시가 벽화의 배경으로 포트탤벗을 선정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포트탤벗은 영국 최대 철강공장인 ‘타타 철강(Tata Steel Plant)’이 위치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포트탤벗을 영국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로 선정했지만, 곧 “측정 수치가 잘못됐다”며 번복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타타철강에서 날아오는 검은 먼지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꼬집은 뱅크시의 새로운 작품에 환호했다.
뱅크시는 세계 곳곳의 담벼락에 풍자 그라피티를 그리는 영국 출신 예술가다.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거나 파괴하는 등의 기행으로 유명하다.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는 지난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04만 파운드(약 15억4000만원)에 낙찰되자마자 갈기갈기 찢기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후 뱅크시가 직접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해 작동시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유명세를 탔다.
강문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