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혼돈에 빠트린 트럼프”, 시리아 이어 아프간에서도 미군 감축

입력 2018-12-22 04:00 수정 2018-12-22 11:35
아프가니스탄군이 지난 10월 아프간 카불 기지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국제분쟁 개입을 꺼려온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발빼기’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워싱턴 정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잇따른 ‘깜짝 발표’에 “미국이 혼돈에 빠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간 주둔 미군 1만4000명 중 7000명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고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안보 고위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병력은 이르면 내년 1월부터 미국으로 복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에 대해 모든 인내심을 잃었다”고 전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17년째 나토(NATO)군과 아프간 정부의 편에 서서 탈레반, 이슬람국가(IS) 등과 싸우고 있다. 미군은 아프간 연합군 중 유일하게 공습에 참여하는 필수 전력이며,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상징한다. NYT는 “아프간에서 미군 축소 결정은 이제 아프간 정부군이 서방 국가의 지원보다 그들의 병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1년 10월 아프간 분쟁 개입에 반대하는 내용의 트위터 글을 올렸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미국의 아프간 분쟁 개입을 반대해왔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1년부터 그는 “언제까지 아프간을 위해 돈을 낭비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미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한 연설에서는 “나라 밖 문제에 너무 많은 미국의 시간과 에너지, 돈을 쓰고 생명을 잃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탈레반 세력이 아직도 강력하다는 점이다. NYT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탈레반의 장악지역은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44~61%에 달한다. 아프간의 고위관료는 “탈레반 반군은 현재 7만7000명에 달하며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의 갑작스러운 축소는 중동에서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 사임을 표명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중요한 국가안보 정책을 갑자기 전환하는 행태는 중동을 러시아와 이란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린지 그레이엄(오른쪽) 공화당 상원의원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철군과 아프간 미군 감축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시리아 철군·매티스 장관의 퇴임·아프간 주둔 미군 감축 등 국제 질서를 뒤흔드는 이슈가 연이어 터지자 미 정계는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우군으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제2의 9·11 테러에 길을 열어주는 셈”이라며 “방금 아프간에서 돌아왔다. 한 치에 의심도 없이 IS는 여전히 미국에 위협적”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시리아 철군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의회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의회전문지 더힐은 보도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이 북한과의 핵 협상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미국이 핵 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입장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며, 러시아는 그들의 악의적인 행동에 대한 일종의 초록불이 켜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행정부는 말 그대로 혼란에 빠져있다”며 “미 역사상 가장 혼돈스러운 일주일”이라고 비판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정치적 수류탄(political grenades)’을 터트리고 있다”고 비유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