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1년 전 괴담 ‘거래소 봇’ 진짜 있었다

입력 2018-12-22 08:50
비트코인 자료사진. 픽사베이 제공

암호화폐(가상화폐) 호황기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무성하게 떠돌았던 말은 ‘거래소가 봇(Bot)을 돌린다’는 소문이었다. 거래소가 허위로 거래량을 늘려 사세를 키우고, 어수룩한 투자자들의 ‘추매’를 유발한다는 추측이었다. 요약하면 ‘거래소가 큰손 중 하나’라는 얘기다.

금·석유·주식·부동산과 같은 제도권 시장에서도 같은 소문은 있었다. 하지만 ‘가상화폐’라는 이름의 의미조차 모호해 모두에게 생소했던 당시 ‘거래소 봇’의 심증을 갖고도 근거를 보탤 전문지식을 가진 투자자는 사실상 전무했다. 대장화폐 비트코인이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에 상장돼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진입한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전후의 일이다.

‘거래소 봇’의 실체가 일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허위 계정을 생성해 가상화폐 거래량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돈을 챙긴 국내 거래소 업비트 운영자들이 기소되는 과정에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김형록)는 21일 업비트 이사회 의장 송모(39)씨, 임직원 남모(42)씨와 김모(31)씨를 사전자기록 등 위작 및 사기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9~11월 허위 계정을 만들어 1221억원 상당의 실물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잔고를 조작하고, 이를 통해 비트코인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자료사진. AP뉴시스

비트코인은 지난해 6월만 해도 300만원대에 거래됐다. 가격은 같은 해 10월 700만원, 11월 1300만원, 12월 2500만원대로 급상승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탈중앙화’와 ‘거품 투기’를 놓고 세계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한 컴퓨터 그래픽카드가 동났던 시기도 이때였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5일 거래된 비트코인 993개 중 3분의 1 수준인 330개는 이들로 인해 허위로 잡힌 매매물량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업비트의 비트코인 시세를 경쟁사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주문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봇’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봇은 ‘드루킹 사건’의 매크로처럼 컴퓨터를 자동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로봇(robot)에서 응용된 표현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일정한 시간과 수량으로 매수·매도를 반복하는 프로그램일 것으로 추측만 되고 있었다.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 중 상당수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게시판에서 1년 전 새벽마다 “봇이 매수량을 늘려 가격 상승이 시작됐다”는 식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운영 주체로 거래소만 지목된 것은 아니었다.

검찰은 송씨 등이 봇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 1만1550개를 매도해 대금 1491억원을 빼돌리고, 일정한 가격·수량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동시에 제출해 거래하는 가장매매, 주문과 취소를 반복해 주문량을 부풀리는 허수주문 방식을 이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서는 컴퓨터에 많은 양의 그래픽카드를 설치해야 한다. 가상화폐 채굴기 자료사진. 픽사베이 제공

검찰은 또 송씨 등이 2개월간 시도한 가장매매 규모가 4조2670억원, 허수주문 규모가 254조5383억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봤다. 검찰은 압수로 확보한 김씨 노트북 컴퓨터에서 ‘고객을 꼬시기 위한 주문’ ‘시장 매력도를 올려주는 핵심 요소’ 등의 문구를 발견했다.

검찰은 다만 업비트가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지급할 여력을 갖췄고, 지금도 대형 거래소로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점을 고려해 송씨 등을 구속이 아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검찰은 다른 거래소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송씨 등의 범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비트는 거래량 증가와 시장안정화 등을 목적으로 가장매매, 허수주문 형태로 거래한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거래소 영업 초기였던 지난해 9월 24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관련된 일부 거래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거래 활성화와 마케팅 목적으로 스스로 코인을 사고 파는 자전거래 방식을 활용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의도에 대해서는 “회사나 임직원 개인이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횡령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부당이득으로 본 1491억원에 대해 “정확히 어떻게 집계된 금액인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