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부터 연일 대북 유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대화 요청에 이렇다할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핵 실무협상을 이끌고 있는 비건 특별대표와 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가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워킹그룹을 통해 철도 연결사업 관련 착공식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오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개최하기로 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은 계획대로 열리게 됐다. 이 본부장은 이어 “남북 간 유해발굴 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됐고, 북한 동포에 대한 타미플루 제공도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우리는 북한의 파트너와 다음 단계의 논의를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다가올 정상회담에 대한 일부 구체적 사항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과 관련한 미국인의 면허 및 여행 허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는 “우리는 워싱턴에 돌아가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와 관련해 보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단계에 대해 한국의 파트너로부터 훌륭한 아이디어를 들어 기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양자 및 독자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없다”고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메시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나오고 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9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미국인의 여행제한 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침묵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대북제재 해제인데,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 유화적 메시지가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북한 대남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논평에서 최근 우리 외교부가 개최한 재외공관장회의를 문제 삼고 나섰다. 매체는 “남북 대화, 북·미 대화 국면이 마치 자신들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 마련된 것처럼 떠들었다”며 “‘한반도 운전자론’을 떠들기 전에 미국 등의 제재·압박 책동에 편승해 남북관계를 침체시킨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처럼 외세의존, 대미 추종의식에 사로잡혀 미국의 비위를 맞추다가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북한이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가 아닌 선전 매체를 택한 것은 수위조절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