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리마스터) 대회가 간만에 ‘투톱’ 체제를 갖췄다. 아프리카TV에서 진행하는 ‘ASL’이 흥행을 지속하는 가운데 블리자드가 자체 운영하는 ‘KSL’이 두 번째 시즌을 무사히 마치며 양대 리그 체제가 정착되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방송자키(BJ)가 진행 중인 팀전 대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랜만에 전략 시뮬레이션(RTS)이 흥행 궤도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가 마냥 핑크빛인 건 아니다. 대회는 여럿이지만 선수 풀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각 대회가 조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팬심마저 갈리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대회는 자체 밸류보다 선수 개개인의 인기가 더 중요한 흥행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팀 해체 후 BJ로 전향한 이영호, 김정우 등은 인터넷방송에서 1만 명 이상의 동시 시청자를 보유한 스타들이다. 여기에 과거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즐겼던 기성 e스포츠팬이 가세하며 ASL의 국내 시청자 수는 e스포츠 대회 전체 2위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태동을 이끈 상징적인 종목이다. 블리자드 또한 이 같은 ‘은혜’를 잘 알고 있다. KSL이라는 자체 주관 대회를 열고, 2년 연속 블리즈컨에 리마스터 매치를 배정하는 등 대회 존속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대회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정적 알력이 있다.
블리자드가 직접 운영 중인 KSL은 현재 트위치TV가 단독 중계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플랫폼에서는 KSL을 시청할 수 없다. 문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팬덤이 대부분 아프리카TV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는 오래전부터 브루드워 대회를 열어 e스포츠 명맥을 이어왔고, 대부분 선수들 역시 아프리카에서 둥지를 틀고 개인방송을 해왔다. 반면 트위치TV는 게임 전문 스트리밍 방송이지만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만큼 시청자의 대회 접근성도 떨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블리자드가 대부분 e스포츠 대회를 트위치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괴이한 상황이 도화선이 돼 아프리카TV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은 KSL 참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잖아도 개인방송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터에 환영받지 못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KSL 출전 선수는 “블리자드가 직접 주최하는 대회라지만 (트위치 대회라) 팬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명분을 찾기엔 손해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회가 많아졌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기회비용 문제가 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빡센 연습’이 필요하다. 그만큼 개인방송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콘텐츠가 적어지면 시청자들 불만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근 MPL(팀 리그)이 활성화되면서 아프리카 쪽 대회에만 몰두하려는 선수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블리자드의 행보를 보면 결정을 내릴 때 사업 타당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팬심이 시나브로 식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근래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e스포츠 대회 셔터를 일방적으로 내리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선수들을 일순 ‘백수’로 만들었다. 오버워치 시장이 완전히 북미로 넘어가는가 하면 ‘하스스톤 마스터즈 코리아’는 어느덧 종적을 감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가 출시된 뒤 매끄럽지 않은 대회 교통정리로 브루드워 팬심과 자유의 날개 팬심이 갈리는 원인을 제공했다. 블리자드는 대회 이분화를 강행하며 협회와 연맹이 나뉘는 등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팬덤의 분리가 승부 조작 사건 못지않게 스타크래프트 대회 하락세에 큰 영향 미쳤다고 평가한다.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힘겹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진 않다. ‘최종병기’ 이영호는 수술받았던 부위가 악화되며 다음 시즌 ASL 불참을 선언했다. 그 외 선수들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마우스를 잡은 터라 터널증후군 등 부상을 호소하고 있다. 병역 문제 또한 임박한 현실이다.
사실상 대회 존치를 위한 ‘골든타임’이다. 블리자드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 온게임넷(현 OGN)과 엠비씨 게임이 대회 진행을 위해 유기적인 협의를 했듯, ASL과 KSL은 공생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두 운영 측이 위원회를 구성해 맵 일원화 등 대회 운영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KSL도 아프리카TV에서 볼 수 있어야 하고, 대회 퀄리티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블리자드가 리마스터 출시를 단순 ‘추억팔이’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온 팬들이 블리자드를 향한 리스펙트를 점점 거둬들이고 있다. 블리자드를 위한 ‘골든타임’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