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위력으로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간음한 혐의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공판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심리로 21일 열렸다. 안 전 지사는 지난 8월 무죄를 선고 받고 129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굳은 표정의 안 전 지사는 오전 10시쯤 서울법원종합청사 4번 출구로 들어섰다. 안 전 지사는 같은 날 댓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같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된 심경을 묻자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312호 중법정으로 향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원 청사 내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안 전 지사가 법정으로 향하자 “안희정을 구속하라”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구호를 외쳐 경찰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재판 시작 전 안 전 지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피고인석에 앉았다. 변호인들과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었다. 안 전 지사 측 좌측에는 김씨 변호인 4명이 앉아있었다.
김씨에 대한 피해자 신문이 예정된 이날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다만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항소이유를 진술하는 모두진술 절차는 공개됐다.
안 전 지사는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묻는 절차인 인정신문이 시작되자 피고인석에서 일어났다. 재판부가 “현재 직업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안 전 지사는 한숨을 고른 다음 “현재 직업은 무직입니다”라고 답했다. 거주지를 묻는 재판부 질문에는 “원래 주소는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현재는 양평에 있는 친구 집에 있다”고 답변했다.
검찰은 모두진술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심은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에 어긋나게 ‘위력’을 부당하게 축소해 봤다”고 주장했다. 1심이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했다는 점도 항소 이유로 들었다. 또 성폭력 사건 재판을 진행하면서 법령에 따라 절차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에 변호인은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변호인은 “도지사와 수행비서라는 관계에 있어서 업무상 위력이 존재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간음이나 추행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1심 판단은 정당하고,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피해자 보호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난할만하다고 해도 성폭력은 별개의 문제”라며 “비난 가능성을 강조하고 이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고 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공소사실의 증명 여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모두진술이 끝나자 안 전 지사에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안 전 지사는 “없다”고만 답했다. 이후 재판은 비공개로 전환, 김씨에 대한 신문을 진행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