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단원고 학생 261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수능을 마친 서울 대성고 학생 10명이 숨지거나 크게 다친 ‘강릉 펜션 참사’도 4년 전과 같은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족 등 피해자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도 여전하다. 사고를 당한 서울 대성고 학생들을 조롱하는 글들이 이어지자 유족뿐 아니라 친구를 잃은 슬픔에 빠진 대성고 학생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공감할 능력을 잃어버린 ‘공감 마비 사회’로 들어서고 있는 징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18일 사건이 일어난 뒤 워마드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학생들을 ‘탄소요정’이라고 칭하며 조롱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일부 입시사이트 게시판 내용에는 ‘풍악을 울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대성고 졸업생과 학생들이 이 같은 모욕글을 자체 수집하고 삭제를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부 역술인은 운영하는 블로그에 언론에 거명된 사망 학생 이름을 사주풀이하는 등 이번 사태를 자신이 주목받기 위한 상술로 이용하기도 했다.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20일 “강원경찰청에서 사이버신고시스템에 접수된 피해자에 대한 모욕성 게시글 1건을 내사 중이며 13건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와 차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경찰서도 “학생들에 대한 혐오발언이 워마드 등 온라인에 올라온 사실과 관련해 학교전담경찰관(SPO)과 대성고 학생 가족 간 논의가 있었다”며 “현재 학교 측에서 고소장이 제출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상 명예훼손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학생과 유족 등을 모욕, 조롱, 명예훼손하는 행위는 형법상 모욕죄, 사자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명예훼손죄 등에 의해 처벌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일간베스트(일베) 등 일부 커뮤니티에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하는 글이 잇따라 게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일베 회원들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 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감 능력 결여는 반사회적 행동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라면서 “상대방이 얼마나 아플까 공감을 하지 못하면 폭력 등을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개인적 차원에서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법적 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한국 사회는 공감 능력이 굉장히 부족해지고 있다”면서 “일베나 워마드에 글쓰는 사람들이 타인의 엄청난 불행까지도 자신의 관심을 얻는 데 이용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지적받았던 일부 언론의 과도한 취재도 되풀이됐다. 사고 뒤 대성고 학생·졸업생들의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인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언론의 과도한 취재 행태에 분노한 학생들의 제보가 게시됐다.
이 같은 지적이 일자 많은 언론사들이 과도한 취재경쟁을 자제했다. 피해 학생들이 입원한 강원도 원주 병원에서는 학부모와 병원 관계자의 요청에 기자들이 피해자 직접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일부 방송사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빈소에서 자발적으로 취재진을 철수시켰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