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은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해킹 및 사기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코인 시장’은 식어가고 있지만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은 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업계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에 대한 탐욕보다는 블록체인의 본질과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할 때라고 지적한다. 블록체인이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규제개선 및 육성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무엇보다 가상화폐 해킹, 사기 등 폐해를 뿌리 뽑아야 블록체인의 올바른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주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20일 400만원 중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올해 초 가격이 2500만원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80% 이상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9일 한국핀테크연합회가 개최한 ‘2019년도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 전망’ 간담회에서 내년에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블록체인 기술이 개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준영 한국핀테크연합회 의장은 “암호화폐는 아주 빠른 거품을 만들어내면서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유사이래 이렇게 빠른 거품이 만들어진 산업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년은 코인에 대한 망상과 지나친 탐욕을 추구한 업자들은 사필귀정이 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김종현 블록체인·융합 프로그램매니저(PM)는 “올해는 아프긴 하지만 약이 되는 해였다. 업계로서도 좋은 경험을 한 해”라며 “블록체인 기술은 여전히 매력이 있으면 투자자들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품 붕괴 사태를 교훈으로 삼고, 가상화폐 거래보다는 블록체인의 본질과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과 중국 등 전 세계 국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뒤처질 경우 선진국들의 기술에 종속되는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의장은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 20년 동안 인터넷 인프라 등을 기반으로 달려왔다”며 “이제 내년은 블록체인으로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 내년이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암호화폐와 코인공개(ICO) 시장 등의 전망은 어떨까.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ICO와 코인 거래소 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봤다. 일반 블록체인 시장의 경우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봤다. 한호현 교수는 “올해 준비했던 블록체인 사업들을 보류하는 기업들이 있다”며 “다만 정부 투자는 상당히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호현 교수는 게임이나 가상현실(VR) 시장 등에서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암호화폐 시장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동수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암호화폐가 날개 없는 추락은 안할 것”이라며 “블록체인 업체들의 ‘백서’를 보면 가끔 암호화폐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모델들이 눈에 띈다. 그런 모델들이 암호화폐와 맞물려 성공하면 암호화폐 시장이 반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어떤 것은 합법이고 어떤 것은 불법인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윤석구 소버린월렛 대표는 “규제 공백상태에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기술과 기술을 사용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대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동수 교수는 “컴퓨터가 나온 후 생산성 향상을 일으키기까지 100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블록체인 기술도 실제로 스마트시티 등 일상생활에 적용돼 부가가치를 일으키기 까지는 최소한 5~6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개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는 국가가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비전문가들을 걸러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호현 교수는 “정부, 기관, 국회 등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활개치고 있다”며 “사익보다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영 의장은 “아직도 대폭락 이후가 코인 투자의 적기라면서 개미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업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