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후 일주일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첫 심리가 19일(현지시간) 열렸다. 이날 웜비어 부모는 북한을 ‘악마(evil)’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북·미 갈등에 따른 정치적 희생”이라고 주장했다고 관영 방송 미국의 소리(VOA) 등이 보도했다.
웜비어 부모는 이번 민사소송의 증거청문심리가 열린 미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뗐다. 이들은 북한 정권이 자행한 고문과 학대 때문에 아들이 사망했다며 배상금 11억달러(약 1조24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웜비어의 어머니 신디 웜비어는 “북한보다 더 악마 같은 존재는 없다”며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는 “북한은 최악의 일을 저질렀다”며 “아들을 위한 정의 구현을 조국에 요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이들은 웜비어가 지난 2016년 평양 기자회견에서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웜비어는 평양의 한 호텔에서 선전물을 훔쳤다고 시인했지만, 그의 유품에 선전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또 웜비어가 오하이오주의 한 교회의 사주를 받아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었지만, 그는 해당 교회 소속이 아니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심리에 참여한 이성윤 미 터프츠대 교수도 웜비어가 당시 ‘미국의 적대 정책(US hostile policy)’이라는 표현을 수차례 사용했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의 강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웜비어 유족 측 변호사는 “웜비어는 (북한과 미국의) 지정학적 싸움에서 볼모로 이용됐다. 그의 강요된 자백과 엉터리 선고는 2016년 당시 북한 핵 실험으로 북·미 간 갈등이 격화된 시점과 일치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웜비어의 죽음은 2016~17년 심화됐던 북·미 갈등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으로, 일종의 정치적 희생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심리에는 웜비어의 가족과 지인 등 총 30여명에 참석했다. 법원에서 웜비어가 고등학교 졸업연설을 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상영되자 일부 방청객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북한 측은 지난 14일 사전심리에 이어 이번 심리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