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사망’ 후 첫 파업… 텅 빈 승강장, 1·2차 때와 달랐다

입력 2018-12-20 15:21
18일 오후 서울 도심의 택시들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앱 정식 서비스에 반대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분신한 택시기사 최모 씨를 추모하는 근조리본을 차량 뒤에 달고 운행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찬바람을 뚫고 뛰기 시작한 지 벌써 30분째. 분주한 출근 시간 서울 지하철 경의·중앙선 용산역에 내린 게 오전 8시10분, 역 앞 광장의 택시 승강장에 도착한 게 이로부터 5분쯤 뒤였다. 그런데 택시가 없었다. 역 주변을 이리저리 뛰며 ‘빈차’ 표시등을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계속 카카오택시를 불렀지만 무응답이었다. 택시 업계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해 3차 파업에 돌입한 20일 아침, 1·2차 때의 전조와 무언가는 달랐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로 구성된 카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오전 4시부터 24시간 전국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원들은 오후 1시부터 깃발을 들고 여의도에 집결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본 집회는 1시간쯤 뒤 시작됐다. 집회 신고 인원은 3만명이지만, 비대위는 전국 10만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발생한 택시기사 최모씨의 분신 사망 사건 이후 기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20일 오후 2시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카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 이들은 '카풀 빙자 자가용 불법영업 퇴출'이라고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시위에 참석했다. 최민석 기자

울분이 더 결집하게 했을까. 출근시간 용산역 광장 인근에서는 비대위 측 예고대로 택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역 광장에 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택시 승강장에 길게 늘어선 줄. 기다리고 있는 시민이 20명 정도 돼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줄은 더 길어졌지만 택시는 오지 않았다. 시민들 틈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커지더니 몇몇은 줄을 이탈해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칫 지각할 위기였다. 결국 카카오택시를 호출하며 역 인근을 뛰어다녔다. 혹시 운 좋게 빈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길 건너편으로 갔지만 빈차 표시가 꺼진 택시만 2대 지나갔다. 실제 승객이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뒤이어 ‘휴무’라고 적힌 택시를 한 대 더 보냈다.

다른 시민들 상황도 비슷했다. 택시를 잡으려는 듯 길가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았고, 다들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모두 카카오택시를 부르는 건가 싶어 켜뒀던 앱 화면을 내려다 봤다. ‘호출에 실패했다’는 문구가 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18일 1차 파업 때 서울 택시의 운행중단 참여율이 10% 안팎이었던 것으로 추산했다. 개인택시 4만9242대, 법인택시 2만2603대 등 총 7만1845대 가운데 불과 7180대 정도가 운행을 중단한 셈이다. 같은 달 열린 2차 파업 때도 참여율은 저조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른 듯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의 경우 지난주 목요일 출근시간대 대비 택시 운행률이 30%가 줄었다”며 “1·2차 파업 때 보다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 카플' 서비스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로 일부 택시 운행이 중단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대부분 운행되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굳이 수치로 가늠하지 않더라도 이날 아침 상황만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길가에 서 있던 시민들은 요금이 비싼 모범택시에도 급히 올라탔고, 이따금 한 택시가 정차하면 시민 3~4명 정도가 몰려갔다. 몰려든 승객을 받지 않고 ‘예약’ 표시등으로 바꾼 뒤 자리를 뜨는 택시도 있었다. 그런 택시 중 일부 차량의 트렁크에 달려있던 건 ‘근조 리본’이었다. 숨진 택시기사 최씨를 추모하는 거였다.

비대위는 이번 카풀 반대 3차 집회에 최씨를 추모하는 의미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지난 10일 오후 2시쯤 국회 정문으로부터 약 500m 떨어진 곳에 정차된 택시 안에서 분신했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택시 기사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이 한 몸 내던져 본다”고 적혀있었다. 격분한 택시 기사들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는 오후 2시쯤 집회를 시작한 뒤 오후 4시쯤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 로터리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택시 1만대로 국회 주변을 포위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은 “‘국회 에워싸기’ ‘마포대교 점거’ 등 극심한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약 30분간 용산역 인근을 배회한 뒤인 오전 8시50분쯤. 결국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돌아갔다. 역 앞 택시 승강장에 있던 것은 시민들이 만든 긴 대기줄 뿐, 택시는 여전히 없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