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굿바이 무리뉴, 곧 다시 돌아오길

입력 2018-12-20 13:00
주제 무리뉴가 18일(한국시간) 경질이 발표된 후 머물던 호텔을 떠나고 있다. AP뉴시스

이번 시즌 16라운드까지 진행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치는 6위다.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단 7번의 승리(7승 5무 4패)에 그쳤다. 이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악의 출발이다. 선두 리버풀에 승점 19점 차로 뒤처져 사실상 우승 경쟁은 끝났고, 현실적인 목표인 4위권의 마지노선 첼시와의 격차도 11점 차다.

책임을 온전히 떠안게 된 이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다. 맨유는 18일(이하 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짧은 인사와 함께 무리뉴 감독의 사임을 발표했다. 2015년 12월 18일, 첼시 사령탑에서 경질된 지 정확히 3년 만이다. 알렉스 퍼거슨에 이어 맨체스터에서 장기집권을 꿈꾸던 무리뉴 감독의 꿈은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허무하게 무너졌다.

무리뉴 감독은 부임 2년 차에 성적을 내는 감독이다. 정확한 분석을 분석과 성공적인 영입을 통해 팀 내 취약 포지션을 보강해 자신의 축구 철학을 완성한 것이 그의 2년 차 성공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맨유에서의 2년 차였던 지난 시즌엔 리그 2위로 마감했다. 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직후 받은 가장 높은 성적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도 3년 차 최악의 부진 속 맨유 경영진들은 시즌 중 사령탑 교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공식적으론 사임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다.

무리뉴 감독은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자신의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 9일 풀럼과의 리그 경기에서 오랜만에 4대 1로 대승을 거둔 후 던진 농담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당시 무리뉴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앉자마자 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물이 없네? 1월에 쓸 돈을 절약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라고 했다. 구단 수뇌부를 겨냥한 뼈있는 한마디였다.

하지만 17일 숙적 리버풀과의 맞대결에서 1대 3으로 패했다. 맨유 지휘봉을 잡은 후 리버풀에 당한 첫 패배였다. 문제는 내용보다도 경기력이었다. 슛 숫자(6-36)와 점유율(36-64%)이란 통계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했다. 제시 린가드가 기록한 한 골은 상대 골키퍼 알리송 베커의 허무한 실수 덕에 얻어낸 행운의 득점이었다. 이날의 졸전은 구단 수뇌부들이 무리뉴 경질에 OK사인을 내리는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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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는 현 상황을 예견했다

“우리와 경쟁하는 다른 팀들은 이미 엄청난 스쿼드를 갖췄다. 첼시와 토트넘, 맨시티를 비롯해 리버풀을 봐라. 엄청난 보강을 했다. 모든 것, 모두를 샀다.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들지 못하면 어려운 시즌이 될 것이다.”

지난여름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전 패배 후 무리뉴 감독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현 상황을 가장 먼저 예견했던 이는 다름 아닌 무리뉴 감독 본인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계속해서 정상급 수비수 영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호소와 같은 그의 요구에 구단 수뇌부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해리 맥과이어(레스터 시티)와 예리 미나(바르셀로나), 토비 알더베이럴트(토트넘), 제롬 보아텡(바이에른 뮌헨)까지 맨유와 이적설이 불거졌던 센터백들만 살펴봐도 무리뉴 감독의 타들어 갔던 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이 중 맨유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는 없었다.

무리뉴 감독의 비관적인 전망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맨유는 16경기에서 29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절반도 채 되지 않아 지난 시즌 기록한 28실점을 넘어섰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중앙 수비 문제가 반복됐다. 중원에서 중앙 수비수로 이어지는 핵심 수비라인의 불안정성이 이번 시즌 가장 큰 부진 이유였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데려온 것이 프레드였다. 하지만 그 역시 제 몫을 해내진 못했다. 그가 안데르 에레라의 약점을 보완하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 약점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 적응 기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수비라인의 불안정성은 미드필더들의 잔 실수로 이어지며 폴 포그바와 알렉시스 산체스의 활용도가 죽고 말았다.

무리뉴 감독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수비조합을 바꾸며 실험했다. 크리스 스몰링과 필 존스와 함께 미드필더 에레라까지 수비수로 배치하는 파격적인 스리백부터 마테오 다르미안과 에릭 바이, 빅토르 린델뢰프와 루크 쇼의 포백을 구성해보기도 했다. 수비구성에 무리뉴 감독이 얼마나 머리를 짜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은 잇따라 부상을 당하거나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무리뉴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없었다. 만들고자 하는 음식이 있더라도 재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 4선 수비를 기본 골격으로 한 유기적인 역습 전술을 즐기는 그의 철학과 수준에 부합하는 선수들은 없었다.

팀원들을 통제해줄 정신적 지주의 부재 역시 한몫했다. 선수단 라커룸에서의 내부적인 문제일 경우 이를 휘어잡지 못한 감독의 책임도 있지만 고참 선수들의 리더쉽 부재도 크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비롯해 애슐리 영이 팀 내 고참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부상을 당하는 등 오히려 강한 이적설의 주인공이 될 뿐이었다. 지난 4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코치로 전향한 마이클 캐릭 역시 온화한 성격으로 선수단을 통제할 수 있을 만한 강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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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의 문제

그라운드 안팎에서 물을 수 있는 무리뉴 감독의 책임도 있다. 우선 자신이 영입한 스타들을 전술적으로 잘 조합하지 못했다는 책임은 물론 무리뉴 감독이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공을 오래 쥐고 경기를 주도하길 좋아하는 성격인 포그바의 위치를 고정한 점, 산체스의 활동폭을 왼쪽으로 크게 제한시킨 점 등이 그렇다. 이들과의 불화설이 맴돌았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왼쪽 측면을 선호하는 앙토니 마르시알과 마커스 래쉬포드가 있는 상황에서 산체스를 데려온 점 역시 의문이다. 마샬과 래쉬포드는 산체스의 존재로 인해 전술적인 이유로 출전시간에서 피해를 보며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고정된 위치를 요구하며 롱볼 위주의 수비 중심 축구를 지향하는 무리뉴의 시스템에서 산체스 역시 날개를 펴긴 힘들었다. 산체스를 지도했던 호세 설란테이 칠레 U-23 대표팀 전 감독 역시 산체스가 아스날에서와 같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로 무리뉴의 수비 전술을 꼽았다.

로멜루 루카쿠도 볼이 공급되지 않으며 하프라인 근처까지 내려와 공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루카쿠는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피지컬과 뒷공간을 파고드는 순간 가속으로 최전방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걸 좋아하는 선수다. 하지만 볼이 제대로 배급되지 못해 장기를 발휘할 기회가 적었다. 미드필더와 포백 수비라인 사이의 불안정성으로 시작해 중원에서의 헐거워진 압박, 이후 최전방에 전달되기까지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결과다. 무리뉴 특유의 수비 축구에서 자신의 공격적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음엔 분명하다. 무리뉴 감독에게 전술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유다.

라커룸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며 선수단도 제어하지 못했다. 이번 경질의 부가적 이유로는 성적뿐 아니라 경기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불만, 선수와의 마찰이 있었다. 이는 맨유뿐만이 아니다. 전 소속팀인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선수단과의 불화설을 비롯해 태업설까지 휘말렸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의 화통한 성격은 마찬가지로 고집이 셀 수 있는 스타 선수들과의 화합에 독이 된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포그바가 지난 9월 공개적으로 무리뉴 전술에 대해 비판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일종의 월권이다. 팀 내에서 절대적이어야 할 감독의 전술적인 판단을 선수가 넘본 셈이다.

마르시알 역시 구단에 통보하지 않고 여자친구의 임신을 이유로 훈련에 뒤늦게 불참하는 등 예상치 못한 기행을 부렸다. 선수단 내의 정신적 지주의 부재하고도 일맥상통한다. 실패를 돌이켜보며 무리뉴 감독 역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선수는 강력한 규율과 억압보다는 대화 속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한다. 베테랑 선수들과 달리 자유분방한 20대 선수들은 엄격한 기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무리뉴 감독은 잠시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전 소속팀인 첼시와 맨유에서 굴욕적인 경질을 당했지만, 아직 무리뉴 감독을 원하는 팀들은 많다. 맨유와 마찬가지로 과도기를 보내며 위기를 겪고 있는 구단들이 그 대상이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이 차기 행선지로 꼽히고 있다. 아직도 무리뉴 감독이 들어 올렸던 트로피와 영광에 베팅하는 구단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축구와 무리뉴의 역사는 함께 했다. 무리뉴가 들어 올렸던 수많은 트로피가 그것들을 증명한다. 4-4-2 포메이션 역시 한동안 유기적인 다른 4선 계열에 밀려 전술적 주류에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메고 시메오네 감독은 중앙 밀집 형태의 수비 강화가 더해 수비라인의 지그재그 배치, 풀백과 인사이드 미드필더의 간격 조정 등으로 단점을 보완해 다시 트렌드로 등장시켰다. 시메오네의 4-4-2는 지금도 변화 중이다.

무리뉴 축구 역시 그와 같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고수한 채 지난 실패를 복기하며 칼을 갈고 있을 테다. 수비를 두껍게 세워 실점을 최소화하는 현대축구의 ‘안티풋볼’, 이후 빠른 공수전환 플레이로 카운터를 치는 무리뉴의 승리 방정식은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