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고졸’ 회사원 친구와 대학 수업을 도강한 소감

입력 2018-12-18 22:40 수정 2018-12-18 22:49

주소연(카이스트 신소재학과 3년)

“출석 부르면 어떡해?” 친구가 속삭인다. 올해로 대학교 3학년, 나는 강의실 의자를 하나 꺼내며 대꾸한다.

“그럼 대답을 안 하면 되지!” 상업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직장인이 된 친구 하나가 대전에 놀러 왔다.

함께 재밌는 일이 없을까 근처 대학교로 구경을 나갔는데, 이리저리 걷다 경영대학의 한 강의실에 슬쩍 자리를 잡았다.

친구는 대학강의가 어떤지 궁금해하던 터였고, 연필 하나 챙기지 않은 우리는 교수님의 눈을 피해 50분간 ‘중국의 분유 시장과 무역’을 다룬 강의를 몰래 수강했다.

복도를 걸어 나오며 수업을 들어보니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보니까 3, 4학년이 듣는 수업인데, 난 이거 고등학교 때 다 배웠거든. 생각보다 별로더라.”

마이스터고등학교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독일의 직업교육제도는 독일 산업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평가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다.

2015년 기준 독일 중학생의 55%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가 아닌 일·학습을 병행하는 직업학교에 진학했는데, 이와 같은 학생들의 관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기업의 참여율이 높아 수업을 학교와 회사에서 이원적으로 진행하고, 현장 중심의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며,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정규직 급여 3분의 1 수준의 월급을 받는 등 강력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업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기업이나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직업에 임한다.

우리나라 실업계 고등학교의 사정과는 상반되는 양상이다.

국내에서는 공고나 상고 등 실업계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

취업 시 직업교육 외에도 추가적인 스펙이 요구됨에 따라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며, 실업계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진학하는 곳이라는 부정적 인식은 그들을 더욱 지치게 하는 요소이다.

졸업 후에도 불리한 실정은 계속된다.

같은 직종에서도 대졸 학생들과 역할이 구분되어 임금 격차가 크고, 진급에서조차 제한이 있는 등 사회적으로 차별된 대우를 받기 일쑤다.

남들이 3년간 대학진학만을 위해 공부할 때 이들은 특화된 전문교육을 받는 것이지만, 실업계는 열등하다는 편파적인 인식은 직업학교를 나온 이들을 유리 벽 아래에 가두는 일이다.

“…그래도 언젠간 야간대학이라도 가야지. 우리나라에서 고졸로 어떻게 살겠어.”

친구의 작은 한숨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는 병행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공부는 실질적인 전문성을 키워줄지, 또 야간대학을 졸업한다면 회사에서 받는 대우가 조금이라도 나아질지 말이다.

2018년, 국내 학생들의 약 20%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로로 선택했다.

직업학교라는 선택지만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교육방식, 노동환경을 모두 바꿔나갈 수 있도록 대안과 정책을 세워 찬찬히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