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6) 씨는 치핵에 의한 항문 출혈이 있어 병원을 방문해 진찰을 받은 결과, 상당히 진행된 암 덩어리가 항문 바로 위에서 만져진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직장암’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게다가 암은 항문에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어 항문을 살리기가 쉽잖은 상태였다. 항문을 보존하지 못하면 수술 후 용변 처리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항문을 보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에 김씨는 매우 낙담했다.
김씨와 같이 직장암이 진단된 환자들의 일부는 암이 항문과 가까워 항문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어 환자들이 수술을 앞두고 항문을 보존할 수 있을지 여부를 놓고 크게 걱정한다. 사회 통념상 인공 항문 설치를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암 수술 시 항문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른바 항문보존 직장암 수술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대장은 항문에서 약 15㎝ 이내의 곧게 뻗은 부위인 직장과 그 외 부위인 결장 부위로 나뉜다. 직장은 배변 시 대변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결장암과 달리 직장암으로 수술 받는 경우 항문과 가깝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증상인 대변이 가늘어지거나, 잔변감, 혈변, 점액성 대변 등 배변기능에 변화가 올 수 있다. 그래서 수술 시 기능적인 면과 근본적인 치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과거 직장암 수술이 많지 않았던 때에는 직장의 하부에 암이 발생하면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복부와 회음부를 절개한 후, 항문을 포함한 직장의 일부 국소적인 림프절까지 절제하는 복회음절제술을 무조건적으로 시행해 환자는 수술 후 영구적으로 용변 처리 시 인공항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수술 기법의 발전과 대장암 조기진단율이 높아지면서 항문을 보존할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난 까닭이다. 수술 기술의 발전과 보조 항암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의 발달로 점차 항문에 가까운 암도 일정거리만 확보되면 괄약근을 살리면서도 복회음절제와 동일한 치료 효과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직장암의 표준 치료는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행하는 것이다.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는 약 5~6주간 시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의 장점은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로 주변의 암세포를 먼저 제거하여, 수술 부위에 발생하는 재발인 국소재발률을 줄여주고,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로 암 조직의 크기를 줄이거나 병기를 낮추어 항문을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 이후 약 8주간의 안정기를 지내고, 수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의 수술 방법은 복강경, 개복, 로봇수술을 이용하여 시행하게 되며, 환자 및 직장암의 진행 상태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여 시행하게 된다.
과거, 항문에서 가까운 직장암의 대부분 환자들은 항문을 제거하는 복회음절제술을 주로 시행하였는데, 이 수술법은 항문 괄약근을 모두 제거하고, 아랫배에 영구적으로 인공항문(장루)을 만들어 배변을 하게 되는 방법으로 환자의 미용적 측면과, 삶의 질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술방법이다. 하지만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의 역할과, 다양한 최신 수술 방법 등의 도입으로 점점 항문을 보존하는 보존술식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중앙대병원 자료에 따르면 중, 하부 직장암에서 복회음절제술의 시행 비율이 34.8%에서 7.4%로 감소하였으며, 국내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도 암 종양이 항문에서 3~4㎝ 이내에 위치한 ‘하부 직장암’의 경우 항문기능을 유지하는 복강경 괄약근간 절제술을 실시해 항문 보존율이 95% 이상까지 높아진 상태다.
복강경 수술은 또한 전통적인 개복수술과 비교하여 절개부위가 작아, 미용적 측면과 함께, 수술 후 통증이 적고, 그로 인하여 회복이 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따라서 항문을 통해 외괄약근을 보존하고 암 종양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여 항문 기능을 보존하여 항문을 살릴 수 있는 수술 방법으로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다.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을 병행하면 수술 시야가 7~10배 확대되어 출혈도 거의 없어 자율신경 보존이 용이하고 항문 괄약근 보존도 쉬워 항문에 아주 근접한 경우라도 항문 보존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하부직장암의 경우라도 1㎝ 이상 하방으로 종양이 확장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안전 경계를 1㎝로 하여 항문까지 확장된 종양이 위치하더라도 괄약근을 침범하지 않고 대장과 연결할 수 있는 항문만 확보할 수 있다면 괄약근간 절제술 및 대장-항문 문합술을 시행, 항문을 살려주고 있다.
한편, 로봇수술의 경우, 복강경 수술과 달리 자유롭게 관절이 움직이며(540도 회전) 수술을 하고 3D 화면을 통해 정밀하게 복강 내 조직을 관찰할 수 있으며, 여러 개의 로봇팔을 수술자 혼자 조작하여 수술자가 더욱 편안한 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에 비해 하부 직장암 환자에서 접근성이 대단히 용이하고 신경 손상이나 혈관 손상 등의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 게 큰 장점으로 꼽힌다.
로봇수술은 다른 수술법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고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됐는데, 수술 중 출혈과 수혈 여부, 수술 부위 감염, 수술 후 소변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비율도 낮으며, 더욱 정확하게 암 조직을 제거할 수 있고, 통증도 가장 적다.
하지만 로봇수술의 경우 아직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비싼 단점이 있지만 향후 건강 보험이 적용되거나 실비 보험 확대 등이 실행된다면 앞으로 직장암 절제 시 로봇수술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초기 직장암의 경우 항문으로 복강경 기구를 넣어 직장암이 생긴 부위를 포함한 직장 전 층과 일부 림프절을 절제하고 봉합하는 ‘항문 경유 내시경 미세절제술’을 통해 항문을 보존할 수 있다.
많은 환자들이 직장암은 항문을 살리기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복강경 및 로봇 수술과 같은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과거와 달리 직장암 환자에서 항문을 보존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