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더 살았다면 택배 열며 웃었을까, 故김용균 기숙사에 놓인 반지

입력 2018-12-18 04:30 수정 2018-12-18 04:30
청년 비정규직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고(故) 김용균(24)씨는 엄마 김미숙씨에게 오랫동안 웬 반지를 사달라고 졸랐다. 영화 ‘반지의 제왕’ 마니아였던 용균씨는 영화에 등장하는 ‘절대반지’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엄마는 잠시 영화에 빠져 그러겠거니 싶어 웃어 넘겼다고 회상했다.

세월이 지난 후 문득 아들이 갖고 싶어하던 반지 생각이 난 엄마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그 반지가 그리 갖고 싶느냐고. 용균씨는 “조금 있으면 취업을 할테니 직접 사겠다”고 답했다. 꽤 듬직한 표정과 제법 다부진 말투였겠지. 미숙씨는 그런 아들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마침내 용균씨는 취업에 성공했고, 직접 번 돈으로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반지를 샀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아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칠흙 같은 세상은 끝내 그에게 반지를 주지 않았다. 반지가 도착하기 직전, 그는 생을 마감했다. 홀로 일하다 점검하던 설비에 짓눌려 처참하게 떠났다. 주인 잃은 반지는 주인 없는 기숙사로 배달됐다. 아들 잃은 엄마는 반지를 부여 잡고 오열했다.

청년 비정규직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17일 오후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청와대 분수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숙씨는 “지금도 반지를 보면 아들한테 전해주고 싶은데, 죽은 아이 손에 반지를 끼워주면 아이는 알까요. 좋아할까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때 해줄걸, 지금 반지를 어떻게 전해주면 좋을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더이상 김씨가 당한 사고는 없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미숙씨는 이날 “모범이 돼야 할 공공기관에서 어떻게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졌는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기를 당장 멈춰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의 턱없이 부족한 인원,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루어진 고용구조 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며 “2년 전 구의역 사고 이후 많은 사람이 분노했지만 돈이 우선인 현장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법안 하나 통과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방지대책 수립·배상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현장시설 개선 및 안전설비 완비 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김씨 분향소를 설치하고 22일 1차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