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 헝가리서 연일 반정부 시위… “노예법 반대”

입력 2018-12-17 18:19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6일(현지시간) 시위대가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 12일 연장근로 시간을 대폭 확대한 노동법 개정안의 의회 통과 이후 4일째 이어졌다. AP뉴시스

연장근로 시간을 대폭 확대한 노동법 개정으로 촉발된 헝가리의 반정부 시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2010년부터 집권해온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노동법을 계기로 터져나온 모습이다.

AP통신 등 외신은 16일(현지시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시민 1만여명이 노동법 개정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12일 의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학생, 노동조합 등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시위대는 “우리는 ‘노예법’에 반대한다” 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단지 민주주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국영방송국 앞까지 행진했다. 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며 최루탄을 쏘면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이번 시위는 오르반 총리 집권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AP통신 등은 보도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6일(현지시간) 1만여명의 시민이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노예법'이라고 반발하며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시위를 촉발시킨 노동법 개정안은 연장근로 허용 시간을 연 25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고용주가 단체 협정이나 노동조합을 거치지 않고 노동자 개인과 근무시간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초과근무 임금에 대한 지급 기한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의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여당 피데스는 지난 12월 야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 130, 반대 52로 처리했다. 피데스는 노동법 외에도 법원과 대학, 중앙은행, 언론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오르반 총리의 ‘철권통치’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4월 반이민 공약 등을 내세워 3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한 이번 노동법 개정안이 기업과 노동자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헝가리 경제의 약점인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유연성을 강화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노예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헝가리가 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이 책정된 상황에서 연장근로 강화는 노동자를 비인간적인 삶으로 몰아넣을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노동법 개정안의 의회 통과 전부터 헝가리 국민의 83%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바 있다.

한편 오르반 총리와 친정부 언론은 시위대에 대해 무정부주의자 혹은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용병으로 묘사했다. 열린사회재단 등을 통해 헝가리에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소로스는 오르반 총리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로 꼽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