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파동’, 카이스트 교수들 “정부의 이례적인 개입이 불쾌”

입력 2018-12-15 05:00
국가연구비를 횡령한 의혹을 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직무정지 요청을 받은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이 지난 4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이사회가 신성철(52·사진) 총장을 직무정지 시키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여부 결정을 유보했다.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과학계 내부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이스트 이사회는 1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제261차 정기이사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요구한 신 총장 직무정지 안건 의결을 유보하기로 했다. 신 총장은 이사회가 끝난 뒤 “이사진 결정에 감사드린다”면서 “신중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학을 경영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카이스트 교수 자치기구인 교수협의회(교협)는 지난 10일 성명서에서 “신 총장의 거취 관련 결정에 있어 신중한 절차와 충분한 소명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사실상 과기정통부를 비판했다. 성명서에는 교협 전체 회원 569명 중 310명이 서명했다.

현재로서는 이사회가 올해 안에 신 총장 거취를 결정할 가능성이 낮다. 내년 초 결정이 그나마 유력하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일단 올해는 물 건너갔다”면서 “정기 이사회는 3월과 12월에 열리는데 내년 3월 이사회 전에 임시 이사회가 열려 이를 의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이사회가 날짜를 못박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7~8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감사에서 신 총장이 DGIST 총장에 재임할 당시 이면계약으로 국가연구비를 횡령했고 제자를 편법으로 채용한 혐의를 발견, 이를 지난달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면계약 대상으로 지목된 로렌스버클리연구소(LBNL)는 위법사실이 없었다고 과기정통부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신 총장은 적극 대응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LBNL를 향한 현금지원은 LBNL의 첨단 연구장비에 대한 독자적인 사용권한 확보를 위해 LBNL 측의 요청에 의해 부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제자 채용 관련해서는 “교수들 간 채용 논의를 거쳐 전공책임교수가 최종 결정하고 적법한 행정절차를 거쳐 임명했으며 관련 증빙서류도 완벽히 보관돼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카이스트 교수 사회는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정부가 독립된 ‘법인’ 카이스트를 좌지우지하려는 것 자체에 불쾌해하는 분위기다. 과학기술계의 상징적 존재인 카이스트 총장의 거취에 정부 부처가 이례적으로 나선 것 자체가 윗선이 개입한 걸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한 카이스트 관계자는 “정부가 미리 결론을 내놓고 일정을 맞춰 일을 진행했다”면서 “교수들은 총장이 결백한지 여부를 떠나 정부가 과학계를 그런 식으로 하찮게 취급한다는 데 화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총장 개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문제이기보다 카이스트로 상징되는, 과학계의 자존심을 건드린 문제로 비화됐다는 설명이다.

신 총장은 현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지난해 2월 취임했다. 한 교수는 “신 총장이 전 정권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루머가 교수 사회에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직책을 맡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해서 정부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같은 날 오후 “카이스트 이사회의 입장을 존중한다”며 “본 사안이 검찰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져 모든 의혹과 논란이 종식되기 기대한다”고 입장을 냈다. 이어 “신성철 총장이 이번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제 문제로 비화시킨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 같은 행동을 자제하기 바란다”고 신 총장 측의 대응을 비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