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한 달 새 두 번이나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를 경고했다. 경제수장이 ‘정치’와 ‘의사결정’을 언급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지난달 국회에서 처음 이 얘기를 꺼낸 뒤 후폭풍은 컸다. 결국 교체된 그는 이임사에서도 같은 경고를 보냈다.
‘경제가 위기’라는 경고는 매일 들린다. 영국 대학의 어느 교수는 “국가비상사태”라고까지 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해답도 나올 수 있을 텐데,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수장은 경제를 넘어 정치의 위기를 말하며 비상사태의 원인이 경제구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에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일까?
먼저 정부의 의사결정은 어떤가. 연속성과 지속성이 없다. 새 정부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미명 아래 습관적으로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일들을 중단하기를 반복한다. 새 대통령과 함께 일신(一新)되는 청와대 비서진과 정부는 기존의 모든 정책에 리셋버튼을 누른다. 대한민국은 지난 5년간 해오던 일을 일제히 멈추고, 옳고 그름을 따질 새도 없이 새 정부가 설계한 방향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국회의 입법권은 분명 강화됐다. 정부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사실상 국회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에 따른 책임이다. 발의되고 처리되는 법안보다 버려지는 법안이 갈수록 많아지고, 법안 처리율도 점차 하락하고 있다. 26.9%였던 18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19대 국회에서 15.0%로 뚝 떨어졌다. 실적을 의식해 급조된 법안이 적지 않다 보니 법률적으로도 허점투성이다. 공익보다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법안도 부지기수다. 이런 법은 민생경제를 옥죄는 또 다른 규제를 낳기 마련이다.
“의사결정권을 줬는데 국민에게 결정하란다.” 각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이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나온 우스갯소리다. 물론 ‘국민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통한 의사결정이 대의제를 흔들고 정당의 존립 근거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면, 이런 의사결정 구조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이미 밝혀진 사례도 있듯이 IT 기술의 발달로 여론조작도 어렵지 않은 시대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생산적인 토론조차 생략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까? 전문성과 대표성이 결여된 불특정 다수의 여론이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의회정치를 대체한다면, 사회갈등을 조정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라는 과학으로 포장하여 특정 세력의 주의주장을 관철하는 정치구조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집단이기주의’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결정 장애’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의 명백한 ‘책임 방기’다. 이래서는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제멋대로 어긋나게 된다. 고대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할 게 아니라면 대의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 분위기와 이에 편승하는 정치의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에게 물어 봐야 할 것’과 ‘권한과 책임으로 결정해야 할 것’들을 구분하자.
최은석 VOSOL PA&C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