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IT 개발자의 죽음’

입력 2018-12-12 16:16

지난 10일 오후 6시 30분 산업은행 별관 2층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산업은행 차세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IT 개발자였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느 IT개발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 죽음으로 내 몰리는 IT 개발자들의 현실을 알아봐 달라는 개발자들의 호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글에 따르면 개발자인 신모 차장은 10일 오후 1시 30분쯤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 동료들은 점심 이후 자리를 비운 신 차장이 반차를 썼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 동료들이 야근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면서다. 그러나 핸드폰 벨소리는 화장실의 닫힌 문 안에서 울렸다. 다음날 두 아이의 아빠인 신 차장의 책상에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의 흰 국화가 올려졌다.

글쓴이는 자신도 이 같은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를 경험해 왔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매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기한 내에 끝내야 했고 쫓기고 쫓기는 중압감은 상상을 넘어섰다고 했다. 무엇보다 수행사인 원청 업체는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자들을 쥐어짰고 개발자들은 스트레스에 공황장애, 뇌졸증, 심근경색 등 질병에 노출됐다.

무엇보다 ‘반프리’라 불리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더 열악한 상황에 내몰렸다.
갑인 원청과 을인 하청은 그렇다 치더라도 병인 재하청 업체, 개인사업자를 발급하거나 3.3% 원천징수 처리해 투입되는 프리랜서들은 포괄임금계약을 맺고 투입됐다.

글쓴이는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정규직만 들어 올 수 있는 만큼 모든 하청업체 직원들을 최저임금으로 정규직화해서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원청과 하청업체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재하청 업체라는 방패막을 세웠다고도 했다. 이어 “죽음은 우리 개발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며 “누구도 우리의 죽음에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의 IT 하청 개발업자들에 대한 갑질 행태 문제는 지난 1월에도 불거진 바 있다. 당시에도 청와대 게시판에는 산업은행 IT본부의 소방안전 위험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개발에 나선 하청업체 직원들이 해당 본부가 있는 건물에선 비상계단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화재가 나면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밀양과 제천 화재로 대형 인명 피해가 난 상황에서 이는 끔찍한 얘기였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