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악몽이라 말씀해 주십시오” 노벨평화상 무퀘게의 기도

입력 2018-12-12 13:18
“침묵 속에 우린 기도합니다. ‘주여, 지금 저희가 보는 이 장면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악몽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잠에서 깨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이죠. 하지만 악몽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이었습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 데니스 무퀘게(63) 박사가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끔찍한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돌보면서 되뇌었던 기도의 순간들을 함께 나눴다.

무퀘게 박사는 수도 없이 겪은 소름끼치는 경험 중 이제 막 병원을 차렸던 1999년 강간과 생식기에 총상 피해를 입은 18개월짜리 여자 아기와 마주했던 순간을 자세하게 전했다.

“여자 아기는 피를 흠뻑 흘리고 있었습니다. 우린 보자마자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 모든 간호사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생식기와 방광은 물론 곧은창자까지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어른들이 강간해서 생긴 상처였습니다.”

무퀘게 박사는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던 건 기도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을 겨냥한 강간과 학살, 고문이 일상화된 현실을 한탄했다.

“18개월 여자 아기가 피해를 입은 곳은 카부무 지역이지만 이런 강간과 학살은 베니나 카사이 등 민주콩고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법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민주콩고와 다른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전쟁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고 호소했다.


“인간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수 천 수 만의 여성들이 강간을 당합니다. 400만 명이 고향에서 도망쳐 난민이 됐고 600만 명이 숨졌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덴마크의 전체 인구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죠.”

그는 이 같은 비극을 끝내기 위해선 전 세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수술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이야말로 이런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무퀘게 박사는 오순절교회 목사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9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국의 여성들이 숱한 질병으로 숨지는 걸 목격한 뒤 프랑스 등에서 의학을 공부해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그는 내전으로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돕기 위해 1999년 민주콩고 부카부에서 판지병원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판지병원에서 산부인과 치료를 받은 여성은 8만5000명 이상이며 환자 중 60%가 성적 폭력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매년 3500여명이 수술을 받는다. 무퀘게 박사는 하루에 10회 수술을 하는 등 강간 피해 여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 5일 전쟁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로를 인정해 무퀘게 박사와 이라크 야지디족 출신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했다.

베릿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무퀘게 박사는 국내외적으로 전쟁 중 성폭력을 끝내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맡았다”면서 “전쟁 중 여성과 여성인권, 안전이 보장돼야만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전쟁범죄 근절과 피해자를 위한 정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했다. 이들은 국제법 원칙의 적용을 통한 인류애 증진에 기여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