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각광받았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2018년 정치권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친형 강제입원’ ‘여배우 스캔들’ ‘조폭 연루설’ ‘혜경궁 김씨’ 등 일년 내내 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이 11일 직권남용 및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이 지사는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했다. 아내 김혜경씨가 ‘혜경궁 김씨’로 알려진 트위터 계정 ‘정의를 위하여’(08_hkkim)의 소유주라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김씨를 무혐의 처분했지만, ‘궁찾사(혜경궁 김씨 찾기 국민소송단)’ 등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추가 폭로를 예고해 논란이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친형 강제입원 지시, 시장 권한 남용”
친형 강제입원 의혹은 2012년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가 친형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고, 공무원을 동원하는 등 시장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 등을 비판하자 이 지사가 강제입원을 시키려 했다고 재선씨 가족들은 지적했다.
하지만 이 지사는 친형이 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진단을 위한 입원 시도를 했을 뿐이며, ‘강제입원’은 형수 박인복씨가 한 일이라고 맞섰다. 양측의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이 지사가 박씨를 향해 성적 욕설을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패륜 논란’으로도 번졌다.
의혹은 올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발했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맞붙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와 바른미래당 김영환 후보는 이 지사의 친형 강제입원 의혹과 형수 욕설 논란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 투표를 앞두고 바른미래당은 이 지사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지사가 선거에서 이긴 후에도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2012년 6월 김혜경씨가 재선씨의 딸에게 전화해 “내가 여태까지 너희 아빠 강제입원 말렸거든, 너희 작은 아빠(이재명 지사) 하는 거”라고 말하는 녹취파일 원본이 공개돼 파장이 확산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11일 정신과 의사 등이 법률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라며 강제입원을 반대했음에도 이 지사가 권한을 남용해 친형 강제 입원을 적극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내렸다. 또 이 지사가 경기지사 선거 토론 과정에서 관련 의혹을 부인한 점을 들어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혹시 김혜경씨세요?”에서 출발한 의혹
트위터 계정 ‘정의를 위하여’(08_hkkim)의 소유주가 아내 김혜경씨라는 의혹은 이 지사에게 치명타가 될 뻔했다. 이 계정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세월호 유족을 언급하는 트윗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지난 4월 3일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 문제가 됐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당의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 출마한 전해철 의원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자 “트위터에 있는 인간들이 민심은 아냐 그치?”라며 비꼬았다. 이후 한 트위터 유저가 “혹시 김혜경씨세요?”라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트위터 계정 소유주가 김씨라는 의심이 일파만파 커졌다.
민주당 경기지사 경선 과정에서 전해철 의원도 ‘정의를 위하여’ 계정주를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공동 고발하자고 이 지사에게 제안했다. 당시 이 계정은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았다”며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 지사는 “아내는 SNS 계정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며 김씨가 계정 소유주라는 의혹을 부인했다. 전 의원은 4월 계정 주인을 밝혀달라며 경기도 선관위에 고발했다. 전 의원은 경기지사 선거가 끝난 뒤 고발을 취하했지만 경찰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 불가)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수사를 계속해왔다.
경찰은 ‘정의를 위하여’ 계정이 쓴 4만건이 넘는 글과 카카오스토리 사진 등 소셜미디어 분석을 마친 뒤 김씨를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달 17일 김씨가 해당 계정의 소유주가 맞다고 발표했지만 검찰은 “해당 계정 소유주가 김씨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며 김씨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김부선 스캔들’과 ‘가짜 총각’ 논란
이 지사가 배우 김부선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미래당 김영환 후보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재점화됐다.
당초 이 의혹의 출발은 2010년 11월 김씨가 한겨레에 실린 김어준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변호사 출신의 피부 깨끗한 정치인’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부터였다. 김부선씨의 인터뷰는 시민단체 출신의 변호사로 당시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지사를 향하고 있었다.
김부선씨는 인터뷰에서 “총각이라는데 그 인생 스토리가 짠하더라. 인천 앞바다에서 연인들처럼 사진 찍고 지(자기)가 내 가방 메주고 그러면서 데이트했다”고 설명했다. “여우 같은 처자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내용도 있다.
스캔들 논란이 일자 이 지사 측이 지난 6월 김씨와 김 후보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면서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두 사람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유력 정치인과 여배우가 ‘밀회’를 가졌다는 의혹은 이 지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지사는 “신체에 큰 점이 있다” 김부선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병원에서 신체검증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의혹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해 이 지사를 기소하지 않았다.
◇‘조폭 연루설’에서 ‘일베 가입’ 논란까지
이 지사는 ‘조폭 연루설’과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활동 의혹,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 선거공보물, 검사 사칭 관련 허위사실 공표 등에 대해서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성남 지역을 중심으로 떠돌던 조폭 연루설은 지난 7월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남지역 조폭 ‘국제마피아파’와 이 지사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증폭됐다. 2007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이 지사가 해당 조직원들의 변론을 맡은 이후 줄곧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의혹이다.
제작진은 해당 조직 출신인 이모씨가 대표를 맡은 업체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성남시로부터 우수 중소기업에 선정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거대 기득권 ‘그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종북·패륜·불륜몰이에 이어 조폭몰이로 치닫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폭 연루설과 일베 활동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다만 검사 사칭 및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정치생명을 건 싸움, 이재명의 운명은
검찰의 기소로 이 지사는 정치생명 최대 위기에 몰렸지만 오히려 도덕성 문제에서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올해 내내 그에게 부담이 됐던 ‘김부선 스캔들’에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아내 김혜경씨가 ‘혜경궁 김씨’라는 의혹도 사실로 밝혀졌다면 치명타가 됐겠지만 검찰은 김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대중적 파급력이 컸던 의혹들로부터 일정부분 거리를 둘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지사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핵심 혐의로 떠오른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남아있다.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및 검사 사칭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도 마찬가지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의 경우 이 지사가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선고받으면 경기지사 당선이 무효가 되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지사가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부당하게 공무원을 동원했다고 판단해 법원이 금고 이상 형을 확정할 경우에도 이 지사는 경기지사직을 잃게 된다.
이 지사가 법적으로 결백을 입증하더라도 정치적 후폭풍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수사와 관련해 “기득권 ‘저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시작됐다”고 맞서왔던 이 지사는 ‘저들’의 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친문(친문재인) 세력까지 겨냥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도 그의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김혜경씨의 ‘혜경궁 김씨’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특혜채용 의혹이 허위라는 것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향후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지사와 여권 핵심인 친문세력과의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지사를 출당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당 지도부는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며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지사는 검찰의 기소 결과가 발표된 직후 “나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민주당원”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