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완 교수의 좌충우돌 아랍주유기](23) 주객전도…순서가 바뀌었다

입력 2018-12-11 16:38 수정 2018-12-11 17:51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용을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결국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이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영리병원은 저수가의 건강보험 환자들을 박리다매 행태로 보기보단 소수의 구매력이 있는 환자들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수익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처음에는 그 대상이 외국 환자들에게 국한될 지 모르나, 국내에도 내 돈 내고 내가 원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들의 욕구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경우 진료를 거부한다는 것은 의료법에도 어긋나고 의사의 기본적인 윤리를 저버리는 일이기에 결국 국내 환자들도 영리병원을 이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의 서민 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과 자신이 고가의 의료비를 내더라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영리병원으로 의료의 양극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현재의 건강보험은 자동차 책임보험 수준으로 격하되며 그 빈자리를 고가의 민간 사보험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료에 대한 부담은 늘고 불평등은 심화되리라는 설명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국가적 의료보장 제도를 운영하는 영국에서조차 이런 고급 수요에 대해 민간 사보험 시장을 열어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료의 사각지대라 할 만한 곳이 없고 한 시간이면 대도시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기에 적정수가의 차별 없고 평등한 의료 제공보다는 젊음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삶의 질 향상에 입각하여 개개인의 건강 욕구에 부합한 개별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국가 경제가 모두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데 유독 의료만 공공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의사의 교육비나 병원 개원 비용에 대해 국가나 정부가 전혀 투자하지 않고 공공의료기관도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 현장의 의사들만 저수가로 옥죄고 있다는 의사들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선진국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경제 형편이 안 좋은 나라들도 의료영역에서 공공 부분이 담당하는 역할이 크다. 의대생 교육이나 의사의 전문의 수련에 정부가 투자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민간의 인적 자원과 민간이 투자해서 만든 의료 기관들을 건강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묶어서 공단이 수가를 통제하고 심사평가원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의사들은 정부의 노예로, 그리고 원가에 못 미치는 터무니 없는 저수가로,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의 무리한 통제 속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의사들은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자고 한다. 특히 영리병원 제도는 환자와 의사 간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낼 만큼 내고, 낸 만큼 서비스를 주고받는 자유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히 지지하는 듯하다.

문제는 영리병원과 관련해 의사들이 아직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의료시장에는 공급자인 의사들과 관리자인 국가, 정부 그리고 소비자인 환자들과 국민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강력한 시장 참여자가 하나 더 는다. 바로 자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의사 개인들은 결코 자본을 이기지 못한다. 대기업이 참여하는 사보험회사들은 영리병원이 가능한 의료시장에서 가장 큰 손이 될 것이다.

의사들은 요양기관 강제지정과 진료수가 통제를 기본 틀로 하는 건강보험이란 제도적 틀안에서 정부의 노예같이 일하던 시절을 뒤늦게 자본의 주구가 된 다음에야 되레 그리워 하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그래도 의사의 면허를 보장하고 건강보험이라는 안정적인 수가 체계를 제공했으나 자본은 어떠 할까? 필자 생각엔 피도 눈물도 없다.

물론 소수의 스타 의사들이나 의사 자본가가 탄생할 것이다. 허나 자본이란 욕망을 의사의 전문성이나 정부의 통제만으로 과연 충분히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권유하고 싶다. 제발 한국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려 하지 말고 이미 영리병원이 가능한 외국에 나가서 한국 의사들이 도전적으로 영리병원을 직접 경험해보라고 말이다.

한국의 의사들이 영리병원을 운영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자본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는지, 국제적 수준의 의료 경쟁력이 있는지, 외국어로 진료할 수준이 되는지, 외국인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인사관리 능력이 있는지, 의료 마케팅이나 홍보가 가능한지 외국인 대상 영리병원을 경영하는데 필요충분 조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영리병원 경험을 축적할 최적지는 어디일까.

필자는 세금이 없고 한국 의사에게 면허를 내주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이 그 중에 한 나라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때 대학 입시에서 화공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점수가 가장 높았고 이들이 한국 중화학공업을 이끌었다. 이후 한국의 전자공학과 졸업생들이 반도체와 전자 산업을 견인했다.

최근 20년 간 좋은 인재들은 주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이들이 의사가 되어 의료자영업자로서 정부에 불평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새로운 대안을 찾아 개인이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선완 교수는
1981년 연세의대 입학하여 격동의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고 1987년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레지턴트를 마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건양대학병원 신설 초기부터 10년 간 근무한 후 인천성모병원을 거쳐 가톨릭관동대학 국제성모병원 개원에 크게 기여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과 중독정신의학이 그의 전공 분야이다. 최근 특이하게 2년 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을 위해 애쓰다가 귀국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