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지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이재수(60) 전 국군 기무사령관이 생전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작성해 최측근에게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투신 현장에서 나온 A4 용지 2장 분량의 글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유서다.
월간조선의 9일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지난달 2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글을 작성해 측근에게 줬다. 글은 2가지 제목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세월호 관련 수사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고, 다른 하나는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다. 모두 컴퓨터로 작성됐다.
이 전 사령관은 첫 번째 제목의 글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업무는) 재임기간 중 가장 힘들고 보람 있었던 업무로 간직하고 있었다”며 “5년이 되어가는 지금, 불철주야 고생한 부대와 부대원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질책하는 것을 보며 안타깝고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어 “참사 발생 후 미국, 캐나다 등 정보기관 방문을 위해 계획된 공무 출장도 급거 취소하고 구조 활동에 전념했다”고 회상한 뒤 “야전부대, 원복 조치 등 불이익을 받은 부대원들에게 사령관으로서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글에서는 “참사 발생 이후 민·관·군·경이 희생자 구조 등 사고 수습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 기무부대원들은 투입된 군과 희생자 유가족 지원을 위해 오랜 기간 최선의 노력을 했다”며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또 “당시 희생자 유가족과 구조 요원들이 매일 탐색구조방법과 사후 수습대책을 놓고 격렬히 대립하는 분위기의 연속이었다”면서 “사고 관련 모든 정보는 현장에 있던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될 수밖에 없었다. 의도적 사찰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은 왜곡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사찰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먼저 “기무사 부대원 중에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 있었다”고 한 이 전 사령관은 아내가 세월호와 같은 경로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교 교사라며 자신도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사령관은 “특히 사령관 재임 중 단 한 번도 대통령과 독대하지 않았다. 정치적 상황에 연루될 필요가 없었다”면서 “대통령 친동생과 고교·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세간의 눈총을 받았던 터라 더욱 이런 역할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함께 중앙고등학교를 나왔다. 육군사관학교 37기 동기이기도 하다.
이 전 사령관은 기무부대의 업무 특성상 ‘동향’ ‘동정’ 등의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활동영역에 있어 군과 민간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외부인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국가위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대와 부대원을 이렇게까지 질책하는 것은 당시의 사령관으로서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사료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사령관은 지난 7일 오후 2시28분쯤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모 오피스텔 13층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다. 이 전 사령관이 투신 전 벗어둔 외투에서 나온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간다.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전 사령관은 2013년 10월부터 1년여간 기무사령관으로 재직했다. 기무사 대원들에게 2014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세월호 유가족의 정치성향 등 동향과 개인정보를 수집·사찰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