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분배’ 가계동향조사 개편 결과 발표…슬그머니 총선 이후로 늦춘 국회

입력 2018-12-09 17:08

국회가 가계동향조사 개편 결과의 발표 시기를 2020년 총선 이후로 슬그머니 연기했다. 가계동향조사는 소득 분배 상황을 알려 주는 지표다. 청와대와 여권은 올해 들어 관련 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나오자 개편이 필요하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를 개편해 2020년 1분기 첫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정부 압박 속 ‘누더기 통계’가 된 가계동향조사가 정치적 입김에 발표 시기까지 늦춰진 것이다.

9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며 “정부는 2019년에 개편되는 사회통계조사 결과의 공표시기를 2020년 5월 이후로 한다”는 부대 의견을 달았다. 국회는 부대의견을 통해 향후 정부의 이행 결과를 점검할 수 있다.

가계동향조사는 2003년부터 실시됐다. 약 8000가구가 3년 동안 스스로 소득과 지출을 적어 통계청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층이 소득 일부를 누락해 현실과 지표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통계청은 지난해부터 가계동향조사를 소득(분기별)과 지출(연간)로 분리해 발표했고, 조사방식도 가계부 방식에서 면접 조사표 방식으로 바꿨다. 또 올해부터는 소득 통계는 폐지하고 지출 통계만 공표하기로 했다. 가계 소득은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연간 단위로 공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로 대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계소득동향(소득) 폐지를 앞둔 지난해 4분기 가계 소득 지표가 좋게 나오자 여권에서는 돌연 ‘유지’ 주장이 나왔다. 소득 주도 성장을 홍보하기 위해선 연간 보다 분기별 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권의 결정은 곧바로 ‘제 발등 찍기’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분배 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와 여권은 또 가계동향조사를 개편하기로 했다. 누더기 통계 논란의 시작이다. 공교롭게 이 시기 통계청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압박 속 통계청은 지난 9월 가계동향조사 개편 방향을 내놨다. 가계동향조사를 2017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가계동향조사의 소득과 지출 부문을 다시 합치고, 면접 조사 방식을 가계부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통계청은 개편 작업을 내년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후 개편 결과는 2020년 1분기에 첫 공개하기로 했다. 내년 4분기 조사 결과는 2020년 2월, 2020년 1분기 조사 결과는 그 해 3월에 발표할 계획이었다. 이로 인해 내년도 예산안엔 개편에 필요한 약 130억원의 예산이 담겼다.

당초 야당은 여권의 통계 왜곡을 막기 위해 130억원을 전액 삭감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최종 합의 과정에서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발표 시기를 조율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발표 시기 조정은 여야 모두의 이해 관계 속에서 나왔다. 여당은 개편 후에도 지표가 안 좋게 나올 경우 2020년 총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야당은 개편 후 지표가 좋게 나오면 불리하다. 여야가 발표 시기를 2020년 총선(4월)이 지난 5월 이후로 합의하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한 셈이다.

국회 관계자는 “이번 부대 의견은 여당은 꼼수를 부리고, 야당은 이를 막지 않은 것이다”며 “통계 발표 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명백한 통계 왜곡이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