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실세 지역구 예산 늘리기 ‘짬짜미’…1조2000억 증액 어디로?

입력 2018-12-09 16:30

“지역 예산 확보했습니다” “총력을 기울인 끝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국회가 8일 새벽 본회의를 열고 2019년도 예산안 469조5751억원을 의결한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예산 홍보 문자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불과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무더기로 증액된 지역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는 정부 원안 470조5016억원에서 5조2248억원을 감액하고, 4조2983억원은 증액했다. 이중 눈에 띄는 건 SOC의 증액 예산이다. 정부가 올해보다 5000억원 줄여 편성한 SOC 예산은 오히려 1조2000억원 늘었다. 이는 전년보다 8000억원 증가한 규모로, SOC 예산이 전년 대비 늘어난 것은 4년 만이다.

◆실세들의 ‘짬짜미 증액’…너도 나도 홍보에 열 올려

특히 이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각당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 등 ‘실세’ 의원들의 늘어난 지역구 예산이다.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본회의 직전까지 밀실에서 증액 심사를 하면서 ‘쪽지 예산’을 주고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실속을 챙긴 건 예결위원장과 각당 예결위 간사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를 맡고 있는 조정식 의원은 예산이 통과된 후 ‘시흥시민 숙원사업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시화MTV~안산 구간’ 확정! 국비 10억원 확보!’라는 홍보 문자를 돌렸다. 조 의원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국회 예결특위 간사를 맡아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추진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결실을 맺었다”라고 강조했다.

예결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도 부산 사상구의 분뇨처리시설 사업비, 부산사상공단 재생사업 시설비, 부산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비, 부산 사상경찰서 덕포파출소 신축비 등 70억원을 증액했다.

이밖에 안상수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소속 의원인 송언석 한국당 의원, 성일종 한국당 의원,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도 지역구 예산을 거머쥐었다. 박순자 국토교통위원장, 국토위 간사를 맡고 있는 윤관석 의원도 지역 예산을 확보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바빴다.

각당 지도부도 예외는 아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서울 강서을 지역에서 지하철 9호선 증차 예산 약 500억원을 챙겼고, 함진규 정책위의장도 지역구인 경기 시흥갑에서도 매화지구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 예산을 따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영 주차장,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등 예산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가진 자’들의 ‘짬짜미 증액’이 반복되자, ‘못 가진 자’의 불만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증액은 예결위원장과 간사들이 밀실에서 다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예결위나 국토위 등 상임위에 들어가려고 당 실세들에게 줄 서는 행태가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그 와중 세비 올려…야3당·박원순 서울시장 등 비판 목소리

국회는 8일 내년도 예산안을 다루면서 국회의원 세비를 전년 대비 1.8% 인상하는 내용의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내년도 국회의원 세비는 공무원 공통보수 증가율 1.8%를 적용해 올해(1억290만원)보다 182만원 증가한 1억472만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에 대한 국민적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회의원의 셀프 연봉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9일 오후 4시 현재 13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에서도 비판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앞서 바른미래당은 4일 의원총회에서 세비 인상분 반납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김정화 대변인은 8일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상생의 정치를 이루는 선거제 개혁은 내팽개치고 세비 인상에만 만장일치인가”라고 비판했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도 같은날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도 국회의원 세비 인상액을 어떤 형태로든 받지 않겠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의원 정수 증가가 불가피하면 현재의 세비를 동결해서라도 이를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국민의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분노의 핵심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고 있고, 인생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라며 “국민들은 이럴때일수록 정치가 국민들의 어려움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국회의원들의 연봉이 2000만원이나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일각에서 사무실운영비, 차량유지비, 유류대 등을 합산해 보도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경비는 예산안 편성 기준에 따라 정상적으로 편성되는 관서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로 의원 개인의 수입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