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으로 둔갑한 성폭행…‘그알싶’이 다룬 30대 부부의 비극

입력 2018-12-09 09:08

불륜으로 둔갑한 성폭행 사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8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손편지와 데스노트-부부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라는 제목으로 30대 부부 사망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방송에 따르면 지난 3월 자정을 갓 넘긴 시간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에서 30대 부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부인은 이미 숨진 상태였고 남편 또한 중태에 빠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경찰은 부부가 발견된 곳에선 전소된 번개탄이 발견됐으며 저항이나 외부흔, 방어흔이 없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사망한 남편 양현우(가명)씨와 아내 강수림(가명)씨는 3년 전 재혼 가정을 꾸린 부부였다.

제작진은 가족들을 찾아가 이들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추적했다. 가족은 제작진에게 부부가 남긴 유서를 건넸다. 18장이나 되는 유서엔 한 사람을 향한 저주가 담겼다. 이 사람은 가족들에게도 익숙한 죽마고우 장모씨였다.

장씨는 지난해 4월 양씨가 업무 차 해외에 간 사이 양씨의 부인 강씨를 폭행, 협박하고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법원에서도 강제에 의한 성폭행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지난해 11월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의 근거는 모텔 CCTV였다. 재판부는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강씨가 자발적으로 모텔로 들어갔으며 출장 간 남편에게 피곤해 잠을 자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강요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을 준비하던 부부는 2심 공판이 시작된 지 3일 뒤 피의자를 비난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5월 부부가 없는 상태에서 항소심이 열렸고 장씨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부부의 죽음은 잊혀져 갔다. 그러던 10월 대법원이 2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대법원은 강씨가 모텔로 따라 들어간 건 맞지만 두 사람이 다정한 연인의 모습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륜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건을 심리하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특정 성별에 대한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의미한다.

폭행과 협박 혐의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장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제작진과 만남을 요청했지만 재판 중이기 때문에 면회가 불가능했다. 이에 장씨는 제작진에게 혐의를 부인한 내용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장씨는 강씨가 맥주를 먹자고 해 모텔로 가 먹자고 했고 강씨가 먼저 스킨십을 하면서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강씨와 장씨가 만났다는 카페 종업원의 진술은 달랐다. 이 종업원은 “남자가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고 스피커폰으로 어딘가로 전화 해 여자에게 들려줬다. 여자는 거의 대화 없이 앉아 있었다. 마감해야 하니 나가달라고 해 같이 나간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강씨의 유서에는 사건 당일 장씨가 통화했던 인물이 적혀 있었다. 강씨는 당시 통화했던 인물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제작진은 유서에 적힌 양씨의 지인 정모씨를 찾아가 상황을 물었다. 정씨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면서 유서에 대해서도 “모른다. 원망 살 짓을 했으면 강씨의 남편이 자신을 가만뒀겠냐”고 말했다.

사건 당일 장씨는 강씨를 만나기 전 다른 지인을 만나 투자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지인들을 폭행해 수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의 지인들은 장씨가 새로운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투자하라고 설득하던 중 다짜고짜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유족들은 부부의 명예를 지키고 상처 받은 가족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장씨에게 유죄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씨는 자신의 결백을 다시 인정받겠다는 입장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