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를 받은 녹지국제병원 측이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에 반발하며 제주도에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영리병원 자체를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은 “우려했던 일이 수순대로 벌어지는 것”이라며 조건부 허가를 내준 제주도를 비판했다. 법적 근거 미비와 더불어, 특히 영리병원에서 발생하는 한국인 응급환자 등으로 인해 결국 내국인 진료까지 허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녹지국제병원 측은 지난 5일 제주도에 “극도의 유감을 표명한다. 조건부 허가 사항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응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병원 측은 지난 2월에도 “외국인 전용 또는 내국인 이용 제한 조건부 허가는 관련 규정에 위반된다”며 제주도에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제주도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녹지병원은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기했다”며 “그게 아니라면 미리 사업계획서를 바꿔서 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 요약본을 보면 ‘녹지국제병원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성형미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의료기관’이라고 적혀있다.
시민단체들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제주도가 안일한 태도로 의료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 김재헌 사무국장은 “녹지국제병원 측이 이미 조건부 허가를 거부했음에도 원희룡 제주지사가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려 틈을 줬다”며 “애초에 공론조사위 권고대로 영리병원 개설을 불허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 초 영리병원 개설 불허 의견을 권고한 바 있다.
법적 다툼으로 갈 경우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 불허’가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법 15조는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시민단체들이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사실상 금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제주도는 조건부 허가의 근거로 “허가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내국인 진료를 하지 않는다면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행정부인 복지부의 유권해석이 사법부의 판단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제주도가 일반법보다 우선하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제한을 둘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최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된 헌법 제36조 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국 국민이 영리병원이나 인근에서 응급상황에 처했을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의료분쟁 전문 박호균 변호사는 “지금은 진료과목이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로 한정돼 있지만 일단 운영을 시작하면 진료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며 “만약 한국 국민이 병원에서 응급상황에 처했는데 진료를 안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유재길 공동집행위원장도 “녹지병원 옆에서 교통사고로 응급환자가 발생해 5분밖에 못 사는데 ‘내국인 진료 못 받으니까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