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이 7일 투신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날 오후 2시48분쯤 서울 송파구 한 오피스텔 건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령관은 경찰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했다는 혐의로 지난 3일 구속 영장이 청구됐지만 기각됐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 소환 당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부대와 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해 임무 수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박지만 회장과 고교·육사 동기
이 전 사령관은 2013년 10월부터 1년간 기무사령관으로 재직했다. 그는 197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회장과 중앙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 둘은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박 전 대통령의 ‘눈물 담화’가 그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기무사 작성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세월호 사건 발생 당시 “일각에 ‘국민 감성에 호소하는 대통령님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대국민 담화시 감성적인 모습을 시현해야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연설 도중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던 사례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 총기난사 추모 연설 도중 51초간 침묵하면서 감성에 호소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실제로 기무사 보고를 받은 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세월호 의인 고(故) 최혜정 교사와 정현선 씨의 이름을 ‘최혜경’ ‘정한선’이라고 잘못 불렀다.
이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선체 인양에 반대하며 희생자 시신을 바다에 수장하자는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인물로 전해졌다. 기무사는 2014년 6월 4일 “국민적 반대 여론 및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인양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보고했다. 아울러 “막대한 인양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부담 불가피” “전원 수습하지 못할 경우 실종자 가족 반발 및 인양비용 낭비에 대한 대정부 비난 우려” 등을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토 의견’에 “실종자 수색 종료 시 전원 수습 여부와 관계없이 선체는 인양하지 않는 것으로 가족들과 협의 필요하다”라며 “인양 반대 여론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유족 개인정보 사찰 혐의… 구속은 피했지만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세월호 유가족 정치 성향 등 동향과 개인정보를 수집해 사찰하게 하고 경찰청 정보국으로부터 진보단체 집회 계획 등을 얻은 뒤 재향군인회에 전달토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이후 6·4 지방선거 등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여론이 불리하게 조성되자 돌파구를 찾고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혐의를 받는 이 전 사령관은 지난 3일 가까스로 구속을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전 사령관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관련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고, 수사 경과에 비춰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시점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당시 이 전 사령관은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게’라는 말이 있다”라며 “그게 지금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속영장 기각 4일 만에 이 전 사령관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군내 인사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대령 시절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과장, 선발관리실장을 역임했다. 2007년 11월 준장으로 진급해 육군본부 인적자원개발처장, 육군 제2작전사령부 인사참모처장을 지냈다.
2010년 6월 소장으로 진급한 후 육군 제53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지냈다. 2013년 4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 인사사령관과 국군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이후 기무사령관 취임 1년 만에 물러나 전역 대기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됐다. 2015년 9월 장성 인사에서 동기인 엄기학, 김영식, 박찬주는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이 전 사령관은 탈락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