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익 많아… 가계부채 ‘소각’ 필요” “예, 유념하겠습니다”

입력 2018-12-07 17:04 수정 2018-12-07 17:16
2016년 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부실채권 70억원 탕감(555명)구제, 돈(빚)보다 사람이 먼저다!" 행사에 참석해 압류예정통고서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국민일보DB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지난 4일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낸다. 약간의 가계부채를 경감할 수 있는 ‘소각’을 정부가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예, 유념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가 600조원 정도 된다”며 “취약한 자영업자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대책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좀더 속도감 있게 검토하겠다”고도 말했다.

일견 과격하게 들리는 ‘소각’이라는 말이지만, 정부는 실제로 빚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1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가난 때문에 10년 이상 갚지 못한 이들’에게 빚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방안이 발표됐었다. 수십만명이 몰릴 것이란 정부의 생각과 달리 신청자가 적자, 기간이 한 차례 연장되기도 했다. 홍보 인원인 ‘서포터즈’까지 가동한 결과 지원을 신청한 이들이 현재 8만7000명까지 늘었다.

‘롤링 주빌리’와도 같은 이러한 정부의 빚 탕감 사업은 ‘포용적 금융’이라는 취지로 소개돼 왔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7일 장기소액연체자 신용서포터즈단 출범식, 지원 현황 점검 간담회에서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에 비해 복지의 발달이 미흡했기 때문에 포용국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커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 상황과 자영업 업황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인해 취약차주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부위원장은 “채무조정을 단기적 관점에서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채무자와의 지속가능한 관계 수립을 위한 ‘투자’로 인식한다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방식이 된다면,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도 우량고객을 확보하는 이익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15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의 총량에서 알 수 있듯 한국 경제는 그간 ‘빚의 힘’으로 지탱됐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빚도 자산이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는데, 이런 때일수록 취약한 계층이 먼저 괴로워진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한다. 2012년 미국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세계로 확산되던 시절 때에는 국내에서도 시민단체들이 장기 채무자들의 채권을 사들인 뒤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문제는 시장 한편에서 조금씩 고개를 드는 박탈감이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의 경우, 정부가 누군가에게 빚을 없애 주겠다고 홍보까지 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겠느냐는 것이었다. 1000만원 이하의 장기, 소액 채무가 전체 가계빚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취약차주 지원 방안을 우려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체와 개인회생 신청 급증 등이 결국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없는 건 아니다.

금융 당국이 취약차주의 금융권 대출 원금을 50% 가까이 감면해주는 채무조정을 준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정부는 공식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고 밝혔다. 정부는 궁극적으로는 가계의 상환 능력을 높여 재기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홍 후보자는 지난 4일 ”가계부채가 가계에 부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 등을 통해 상환능력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