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오경주(35·여)씨는 3년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사용했다. 그는 ‘프리퀀시’(커피 마시면 받는 쿠폰)를 모아 다이어리를 얻으면 마치 어릴 때 ‘칭찬 스티커’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오씨는 4일 “커피 프랜차이즈의 다이어리는 젊은 여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성을 충족시켜 주는 디자인이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바쁜 육아로 지친 육신을 달래고자 하루에 커피를 한두 잔 마신다는 유주리(34)씨도 카페 다이어리를 5년째 사용 중이다. 유씨는 “카페 다이어리는 마케팅으로 활용해서 그런지 퀄리티도 좋고 감성적이다. 커피를 평소에도 자주 마시니까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얻는 느낌이라 소비자로서는 공짜로 선물을 받는 기분”이라고 했다. 유씨는 올해도 이 다이어리를 쓸 예정이다.
◇‘SNS 시대’에도 위력을 발휘하는 다이어리
다이어리 ‘득템’ 계절이 돌아왔다. 온라인에서 일상을 기록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늦가을에서 연말까지 기간에는 유독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다이어리가 힘을 발휘한다. 그 증거가 다이어리 득템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다.
MIR 마케팅혁신연구소 이준호 소장은 7일 “카페 다이어리가 잘 팔리는 이유는 공동체 의식을 스스로 정의하게끔 만들어 ‘나는 카페 멤버십이 있는 사람들에 속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브랜드 커피를 마시고 고급 다이어리를 쓴다는 후광효과 심리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경우 ‘미션 음료’ 3잔 포함 17잔의 프리퀀시를 적립하면 다이어리를 받을 수 있다. ‘미션 음료’란 스타벅스가 시즌 메뉴로 지정한 특정 음료들이다. 가령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서는 미션 음료 3잔에 아메리카노 14잔을 마시면 프리퀀시 17장을 적립할 수 있다.
할리스도 시즌 음료 3잔 포함 총 10잔, 파스쿠찌 다이어리는 시즌 음료 2잔을 포함해 최저가 총 8잔의 음료를 마시면 각각 매장에서 다이어리를 얻을 수 있다.
비용 측면에서만 따져보면 다이어리족들의 선택을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타벅스의 경우 다이어리를 별도 구입할 때 가격은 3만2500원인 데 비해 17잔의 음료 구매 최소비용(미션음료 3잔+아메리카노 14잔)은 5만원이 넘는다. 할리스나 파스쿠찌의 경우도 가격 차는 있지만 대체로 스타벅스와 비슷하다. 다이어리를 별도 구입할 때 가격도 3만원이 넘기 때문에 일반 다이어리보다 비싼 편이다.
하지만 커피 프랜차이즈 다이어리를 쓰는 이들은 비용 외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카페 다이어리는 특유의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말 그대로 ‘쓰는’ 것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다이어리’를 검색하면 62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특히 2004년부터 다이어리를 카페 굿즈로 하는 마케팅을 펼친 스타벅스의 경우 ‘#스타벅스다이어리’라는 게시물로만 9만3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있다.
왜 카페 다이어리인가?
3년째 카페 다이어리를 모으고 있다는 대학생 김태완(21)씨는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감성’으로 찾듯이 자연스럽게 카페 다이어리만 이용하게 됐어요. 모바일보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듯이 1~2줄을 남기는 게 더 감성적이고 가치있다고 느껴지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다가 우연히 받은 카페 다이어리의 매력에 빠졌다는 윤태호(27)씨는 ‘왜 다이어리를 쓰냐’는 질문에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손으로 넘기는 그 느낌이 좋아요. 핸드폰으로 기록하게 되면 수많은 폴더 중 하나를 추가하는 느낌이지만, 다이어리 하나를 일년 동안 꽉 채우고 책장에 꽂아두면 느낌이 다르죠. 추억이 자리 잡는 느낌이랄까”라고 덧붙였다.
카페 다이어리를 ‘득템’하려는 이들의 소비 심리를 ‘포미족’의 시각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포미(FORME)란 건강(For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첫 자로 만든 신조어로, ‘forme’라는 영문표현처럼 건강, 여가생활, 자기개발 등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과감히 투자하는 가치지향적인 소비형태를 말한다.
국내 1인 가구, 싱글족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다이어리가 더욱 잘 팔린다는 것이다. 내적인 ‘건강’(심리)을 챙기기 위해 ‘여가’시간에 ‘자신’에게 집중하며 글을 쓰고, 평소 멀리 가지 않아도 ‘편한’ 공간인 카페에서 저가의 문구 다이어리보다는 ‘고가’의 카페 다이어리를 사용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성장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한 소속감, 과도한 경쟁 등으로 심리적 만족을 얻기 위한 소소한 소비가 이어진다”며 “자존감이야말로 새해 소비를 좌우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이어리를 얻기 위한 과정이 ‘가치 소비’가 아닌 ‘과소비’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소장은 “프랜차이즈 커피 다이어리는 적립 제도 등 사람들에게 목표의식을 설정한다. 소소한 목표를 설정하는 재미와 도전의식을 제공한 한정판 굿즈(GOODS)를 판매하는 고도의 상술”이라며 “합리적인 소비인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이신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