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구계가 때아닌 이적설로 뜨겁다. 주인공은 김민재(22·전북 현대)다. 그가 중국 슈퍼리그의 끈질긴 구애를 결국 받아들였다는 소식이다. 중국 슈퍼리그의 베이징 궈안으로부터 거액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이적료까지 함께였다. 궈안은 전북에 김민재의 몸값으로 이적료 900만 달러(약 100억원)를 제시했다. 김민재가 궈안 유니폼을 입게 되면 받게 되는 돈은 4년 동안 연봉 약 42억원. 총액 1500만 달러(약 166억원)다. 현재 전북에서 받는 5억원의 약 8배 금액이다. 충분히 마음을 흔들릴 법하다.
국내 K리그 첫 몸값 100억원대 스타의 탄생.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다.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잖다. 이변이 없는 한 그가 내년 1월 아랍에리미트(UAE) 아시안컵에 나설 정예 요원이라 시기 또한 좋지 않았다. 앞서 소속팀 전북의 선배 이재성이 중동과 중국에서 오는 거액의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연봉과 몸값을 낮춰 독일 무대를 택한 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재성이 택한 홀슈타인 킬은 재정 규모가 작은 2부리그 소속이다.
김민재는 K리그에서 더 이룰 것이 없다. 그의 소속팀 전북(승점 86점)은 이번 시즌 2위 경남(승점 65점)과 무려 승점 21점 차의 압도적인 우승을 했다. 김민재 역시 그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데뷔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29경기(2골)를 뛰더니 올 시즌도 23경기에 나서 1골을 기록했다. 김민재가 지키는 전북의 수비진은 38경기에서 단 31골만 내줬다. 경기당 한 골도 내주지 않은 짠물 수비다. 김민재는 이를 인정받아 2년 연속 베스트11 수비수에 선정됐다.
최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활약을 바탕으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도 승선하며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다. 기존의 장점이던 특유의 저돌적인 수비력뿐 아니라 벤투 감독이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빌드업 능력도 향상됐다. 벤투 감독은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물론 모든 선수에게 긴 크로스나 롱볼보다는 짧은 패스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민재는 앞서 본격적으로 중용 받기 시작한 11월 A매치에서 대표팀에서 제명된 장현수에 이어 후방 빌드업의 핵심 연결고리 임무를 잘 수행해냈다.
앞서 결정을 내렸던 선배 이재성처럼, 그에게도 이젠 무언가 동기부여가 필요함은 확실하다. 국내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뤘다. 선수로서 더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 그 안일함만으로 성장이 지체될 수 있다. 그렇기에 김민재에게 K리그는 다소 작은 우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작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한 선택은 현재로선 중국 슈퍼리그가 유력한 상황이다.
중국의 아시아 쿼터, 김민재는 ‘태풍 속 도로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50년까지 자국 축구를 세계 최강 수준으로 올려놓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은 축구의 변방으로 꼽히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약체다. 무언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한 차별화 정책이 필요했다. 그 방법으로 택한 슈퍼리그의 방법은 이른바 ‘황사 머니’였다. 막대한 이적료와 연봉으로 거액의 외국인 용병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슈퍼리그가 선수 영입에 쓴 금액인 4500억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덕택에 슈퍼리그는 과거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실력과 위상이 향상됐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상하이 상강 등 슈퍼리그의 강호들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헐크와 파울리뉴, 오스카와 알렉산더 파투 등 쟁쟁한 브라질 용병들이 돈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 채 중국 무대를 향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가 중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숱한 유럽의 명장들도 중국 무대로 향했다.
과감히 미꾸라지 연못에 메기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계산과 달랐다. 본래 계획대로면 미꾸라지가 침범자인 메기에게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느냐 더욱 날렵해지고 살이 통통히 쪄야 했다. 하지만 미꾸라지들은 메기가 들어온 연못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모두 잡아먹히고 말았다. 중국 슈퍼리그가 그랬다.
자국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자리를 잃고 말았다. 자연스레 그 결과는 중국의 A대표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자국 리그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나 이와 비례 되어야 할 대표팀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슈퍼리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칼을 빼 들었다. 급작스레 외국인 선수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자국 선수 육성하기 위해 외국인 용병에 제한을 둔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아시아 쿼터까지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최대 5명에서 4명으로 축소한 것이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최대 3명뿐이다. 아시아 쿼터가 없어지며 같은 아시아 국가 선수들도 똑같은 외국인이 됐다. 기존엔 아시아 쿼터에 따라 팀당 보유할 수 있는 4명의 외국인 선수 중 아시아 국적 선수가 1명 이상 포함돼 있으면 1명의 외국인 선수를 추가로 보유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최대 3명뿐,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역시 5명에서 4명으로 축소됐다. 별도의 아시아 쿼터는 없다.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 선수들이다. 최근 4년간 동향을 살펴보면 슈퍼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좋았다. 수비수들을 중심으로 많은 한국 선수들이 중국으로 향했고, 그들이 설 자리는 충분했다. 하지만 중국이 갑작스레 자국 선수 육성정책을 펴며 상황이 달라졌다.
홍정호와 김승대, 김형일 등 여러 선수가 중국 무대에서 자리를 잃고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장현수와 김기희 역시 슈퍼리그를 떠나 다른 해외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외에도 오범석과 황일수, 하태균과 황석호 등도 중국 무대를 떠나야 했다. 권경원과 김주영 등이 아직 버티고 있을 뿐이다.
벤투호의 대체 불가한 입지를 자랑하는 중앙 수비수 김영권은 아예 슈퍼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돼 경기에 나설 수도 없는 처지다. 실제 지난 5월 이후 광저우에서 출전한 기록이 없다. 계약 기간이 남아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전을 타진하지 못했다. 유럽행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지만 그때면 만 29세가 될 아시아 센터백에 매력을 느낄지는 미지수다. 김민재의 중국행에 팬들이 우려하는 것 역시 이러한 부분이다.
궈안의 현재 외국인 용병은 3자리가 차 있다. 브라질 출신 헤나투 아우구스토와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지난 1월 비야레알에서 데려온 세드릭 바캄부, 스페인 출신 공격수 조나탄 소리아노가 그들이다. 현재 궈안의 공격루트는 상당히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현 상황에서 김민재가 궈안 유니폼을 입는다면 뛸 수 있는 경기는 아시안 쿼터가 남아있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뿐이다. 김영권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한 매체는 궈안이 김민재 영입 목적 중 하나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같은 조에 속해있는 전북의 전력을 약화시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변수는 아시아쿼터 부활이 최근 재논의 중에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선수에 대해 출전 제한을 풀어줄 가능성이 남아있다. 2019시즌부터 외국인 쿼터를 5명으로 늘리고 아시아 쿼터가 부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선수들이 중국 슈퍼리그에서 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듯 슈퍼리그는 지난 몇 년간 급변하는 판도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매 시즌 용병 정책을 바꿔왔다. 무산될 가능성도, 추후 다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여지도 분명히 남아있다.
23세 김민재, 이제 막 출발점에
김민지는 이제 겨우 만 23세의 나이다. 차기 행선지지가 어디로 결정이 나든 그가 새 출발선에 섰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막 축구 인생의 날갯짓을 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일어서는 시기다. 아시안컵도, 차기 행선지를 둘러싼 어려운 결정도 앞두고 있다. 지난 해 프로 데뷔 이후 그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김민재의 선택은 팬들이 기대하는 부분과 다르게 될지 모른다. 대중들은 그가 앞서 K리그에서 떠나간 선배 기성용과 이청용, 가까이는 이재성과 같은 길을 걸어가길 바라고 있다. 좀 더 성장한 후 유럽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바람과 다른 길을 걷는 그 아쉬움에 물질을 쫓는다는 비난도, 현실에 안주한다는 손가락질도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김민재는 돈보단 꿈을 좇는 선수이길 바란다. 중국 무대가 누군가에겐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는 곳이고, 거액의 연봉에 끌려가는 곳일 수도 있지만 김민재에겐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되길 응원한다. 그가 대표팀 세대교체의 중심이자,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미래임엔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민재의 성장이 한국 축구의 성장이기도 하다. 그가 안주하지 않고 성장세를 거듭하며 그만의 길을 걷는다면, 중국행에 대한 후배 선수들과 팬들의 인식 역시 조금은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짧았던 김민재의 선수 경력을 살펴보면 운이 참 많았던 선수란 생각이 든다. 세계가 그를 주목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바탕이 충분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게임도, 월드컵이 끝난 후 세대교체의 전환점을 맞은 대표팀도 그렇다. 이른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까지 받았다. 선수 생활의 걸림돌은 더 없다.
대표팀에서 기존 붙박이 자원이던 장현수의 예고 없는 이탈도 김민재에겐 사실 행운이었다. 최강희 감독부터 김학범 감독, 지금의 대표팀 벤투 감독까지. 그를 누구보다 잘 활용할 수 있고 성장세를 제시해줄 수 있는 은사였다. 궈안의 로저 슈미트 감독 역시 김민재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줄 역량은 충분하다.
선택은 김민재의 몫이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 지금까지 그랬듯 그가 걷게 될 고된 길을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길 바란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