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남은 건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한강에서 4일 숨진 채 발견된 박준경(37)씨가 유서를 통해 남긴 말이다.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씨의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는 가방, 옷가지와 함께 3일 오전 11시쯤 마포구 망원유수지에서 발견됐다.
공개된 유서에서 박씨는 “아현동 572-XXX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세 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다”라며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이런 선택을 한다”고 적었다.
박씨는 “저는 이렇게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이다.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적었다. 이어 “하루가 멀다 하고 야위어 가며 주름이 느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항상 짐이 돼 부끄럽고 죄송하다. 못난 아들 먼저 가게 돼 또 한번 불효한다. 어머니가 안정적 생활을 하시길 바란다”고 글을 맺었다.
빈민해방실천연대에 따르면 박씨는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아현2구역에서 노모와 살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7월과 9월 연이은 강제집행으로 거주할 곳을 잃고 개발지구 내 빈집을 전전했다. 지난달 30일 기거하던 공간마저 강제집행으로 잃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현2구역은 2016년 6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재개발 사업이 진행돼 현재까지 24차례의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빈민해방실천연대는 “철거민 박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대는 “국가가 박씨를 죽였다. 이는 사형이자 국가의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는 박씨의 어머니도 참석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싫은 말 듣는 것도 상처받던 아들”이라며 “그렇게 가게를 하고 싶어하던 아들이었는데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3일 망원 유수지를 지나가던 행인이 가방과 유서를 발견하고 신고해 한강경찰대가 수색 작업을 벌여왔다. 박씨는 4일 오전 11시 35분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문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