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다사다난했던 한 해 일정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다. 감독이 두 차례나 바뀌었고 간판스타 박주영의 출전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시달렸던 서울의 끝 모를 부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단 창단 첫 하위 스플릿도, 승강제 도입 후 최저 순위라는 위기도 현재진행형이다. 황금기를 이끌었던 최용수 감독이 소방수로 다시 돌아왔음에도 효과는 미미하다. 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치른 7경기에서 거둔 승리는 단 1승뿐이다.
이젠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난 1일 열린 상주 상무와 K 리그1 경기에서 0대 1로 패하며 반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승점 1점만 추가하면 잔류를 확정 지을 수 있었지만, 천금 같은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11위(승점 40점)에 머무르며 상주 상무(승점 40)에 다득점에서 밀려 승강 플레이오프(PO)를 치러야 하는 신세가 됐다. K리그 정상급 팀으로 군림했던 이들이 국군체육부대에까지 밀려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다. 이젠 더 뒤가 없다. 한 발짝 물러서면 낭떠러지다.
운명의 맞대결을 펼칠 상대는 2년 연속 승강 PO에 나서는 부산 아이파크다. 부산은 지난 시즌에도 승강 PO에 진출했지만,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 끝에 상주에 패하며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각오로 부산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더욱 특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역사도 부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잔류와 승격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팀들의 분위기와 절실함의 차이 때문일까. 승강 PO에서 K리그1 11위 팀이 살아남은 것은 지난 시즌 상주가 유일하다. 그 이전에 단 한 번도 11위 팀이 생존한 선례가 없었다. 상·하위 스플릿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소 득점을 기록한 11위 팀들도 모두 강등당했다. 서울이 현재 그 위치에 있다. 올 시즌 40골로 리그 최소 득점을 기록 중이다.
우승을 놓치는 팀들의 문제가 수비 불안에 있다면, 대부분 강등권 경쟁을 하는 팀들의 문제점은 수비보다는 저조한 공격력에 있는 경우가 많다. 확실하게 해결해줄 골잡이가 없으니 선제 실점이라도 당하면 그대로 경기 내내 끌려다니다 패배를 면치 못한다는 뜻이다. 서울은 주축 미드필더 고요한이 8골을 기록하며 팀의 최다 득점자이자 에이스 노릇을 하는 실정이다.
반면 부산은 지난 시즌 K리그2에서 36경기를 치르는 동안 최소실점 2위(35실점)를 기록했다. 경기당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53골로 공격력 역시 날이 서 있다. 공수간의 균형과 조화가 잘 맞는 팀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A대표팀까지 합류한 김문환이 버티고 있다. 전 서울 소속으로 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김치우와 이재우도 있다. 정반대 상황에서 만나게 된 두 팀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겐 서울이 강팀이라는 인상이 남아있다. 근거는 충분하다. 그들의 K리그 6회 우승 역사 중 2010년대 우승만 무려 3차례다. 2012년 스플릿 시스템 도입 후에 6년 연속 상위 5위권에 안착했다. 대한축구협회(FA)컵에서도 2차례(1998·2015년) 우승을 거뒀다. 분명한 K리그의 리딩팀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됐다.
토대는 충분하다. 독보적 유소년 시스템
서울은 훌륭한 유소년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고용된 직원 역시 국내 구단 중 제일 많다. 국내에선 그야말로 독보적인 클럽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과 독일 같은 유럽 선진 문화를 지향해왔던 결과다. 구역을 세분화시켜 동서남북 원팀드, 파워풀, 와이즈, 브레이브 총 4개 야드로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나눠서 관리하는 방식은 오랜 투자와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의 유소년들은 동부에 포스 1팀, 서부에 포스 2팀으로 나뉘어 체계적인 코치진들의 지도 아래 유소년 연령별 팀을 거쳐서 축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U-12와 U-15의 연령별 주말 리그도 있다. 이렇게 찾아낸 보석들이 지금도 유럽 무대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기성용과 이청용이다.
서울은 유소년 축구 교실에서 시작해 상위단계로 계속 올라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더 위로 올라갈 곳이 있다는 것은 제 2의 기성용·이청용을 향해 달려가는 꿈나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기에 충분하다. 엘리트 육성 중심의 한국 학원 축구에서 서울의 유소년 시스템은 더욱 빛나고 있다.
서울의 유소년 시스템 운영 방식은 다른 구단에서도 참고할 법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시행하기엔 제한점이 많다. 인천 유나이티드나 현대산업개발을 모기업으로 하는 부산 아이파크 등 몇몇 구단이 서울 정도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독자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운영 중이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사정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돈’이다. 유소년 시스템을 확장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축구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민 구단은 심각한 적자구조 상황을 개선하지 못해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과 같은 다수의 축구장 운영은 물론이고 유소년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한 상상 이상의 많은 금액을 투자할 여유는 없다.
가뜩이나 인재풀까지 적은 지방 도‧시민 구단에 선진 유소년 시스템 구축은 머나먼 꿈같은 이야기다. 지역 내 축구 아카데미와의 상생 문제도 있다. 대도시에 도‧시민 구단, 중소도시에 대기업 구단이라는 기형적인 구조 역시 한몫하고 있다.
이렇듯 서울은 다른 구단들에 비교해 탄탄한 유소년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1~2년 사이에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구단의 토대이자 뿌리가 될 수 있는 건강한 유소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으로 결과가 나와야 마땅하다. 서울은 그 반대다. 날이 갈수록 성적은 들쭉날쭉, 경기력 기복만 높아지며 뒤로만 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런트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예전과 같은 투자가 없다.
안일한 이적시장 정책으로 용병 농사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몰락의 이유다. 그간 서울이 황금기를 구가하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던 이유는 용병들의 지분이 컸다. 아드리아노와 데얀, 몰리나 등 대부분 공격루트를 오롯이 용병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전북을 비롯해 많은 K리그 팀들 역시 다르지않지만 서울은 그러한 용병 의존증이 유독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스마르와 윤일록, 데얀 등 기존 팀의 주축들을 떠나보내며 데려온 선수들은 박동진과 정현철 등 수비자원들이다. 알덴손과 에반드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마티치 역시 적응 기간이 짧았음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실망스럽다. 올 시즌 서울을 거쳐 간 외국인 용병 4명이 만들어낸 득점은 단 10골이 전부다.
추후 확실히 해결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용병 영입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소년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성장책일 뿐 즉시전력으로 활용하긴 힘들다. 인플레이션이 매년 가속화되는 세계 축구 시장 흐름 속에서 투자 없는 성공을 기대한다면 욕심이다.
서울의 마지막, 몰락한 왕가로 끝이 날까
서울의 모기업인 GS그룹의 예전 같지 않은 투자와 떨어진 프런트 의지의 이유를 찾는다면 홍보 효과 부족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서울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며 성적 부진의 늪에 빠진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팬들 역시 많이 떠나갔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도 적어졌다.
관중 수도 예전 같지 않다. 1대 1로 비겼던 강원 FC와의 지난 10월 최용수 감독 복귀전에선 홈경기 관중 수가 고작 6958명에 불과했다. 주말과 휴일 평균 관중 수의 절반 정도로 뚝 떨어진 셈이다. 그간의 인기를 고려한다면 충격적인 지표다. 8년 연속(2010~2017년) 단일 시즌 30만명 이상 관중을 유치했던 서울의 영광은 이제 과거가 됐다. 이젠 골수팬만이 남아 홈구장을 찾고 있다.
떠나간 팬심에 쌀쌀해진 날씨 탓만 할 수 없다. 스플릿 제도 도입을 비롯한 잦은 리그 방식 변경으로 리그의 정통성 저하 문제도 컸다. 복잡해진 리그 시스템에 팬 혼란이 가중됐다. K리그가 전체적으로 침체기를 겪은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현재의 승강제를 좀 더 확실하게 안착시키고 스플릿 시스템의 고도화와 안정이라는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 다만 이는 축구협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일차적인 문제는 당연히 선수단을 비롯한 구단에 있다. 부진한 성적과 아쉬운 경기력이다. 강등이 눈앞인 상황에서 팬들이 추운 날씨 속에 애써 경기장을 찾을 이유는 없다. 최 감독도 감독으로서의 복귀전을 치른 후 “상대가 상암에 들어왔을 때는 상대를 압도하는 홈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는데 지금은 관중이 줄어들었다”면서 “이건 결국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할 과제다. 매 홈경기만큼은 서울다운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며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러한 문제를 되짚었다.
2018년 서울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곧 결정 난다. 오는 6일과 9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부산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양 팀의 승수가 같으면 1‧2차전 합산 득실차로 승자를 정하되, 원정 다득점까지 같으면 전후반 15분씩 연장전에 들어간다. 연장전 무승부 때는 A팀-B팀-B팀-A팀 순서로 차는 ‘ABBA 방식’의 승부차기로 최종 승자를 결정한다.
강등된다면 가뜩이나 떨어진 관중수와 투자는 더욱 곤두박질칠 터. 서울엔 창단 이래 최고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추락은 K리그 자체의 인기가 떨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지금쯤 강등과 잔류의 강등 길에 선 서울을 바라보며 K리그 관계자들의 마음 역시 초조할 것이다.
단순한 인기뿐만이 아니다. 서울이 안정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국축구에 미친 영향은 절대 적지 않다. K리그의 추락은 곧 한국축구의 위기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서울의 문화 콘텐츠로 대표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승격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을 부산 선수들에겐 미안하지만 서울이 잔류했으면 좋겠다.
기성용과 이청용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서울 유소년 시스템의 간판 계보를 이을 선수가 이제는 나올 때가 됐다. 그 유력한 후보로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측면 수비수 윤종규를 꼽고 싶다. 폭넓은 연계와 활동량, 어린 선수다운 투지와 열정까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를 위한 첫 번째 징검다리는 단연 잔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 속에 최 감독과 선수들 모두 심리적인 불안감과 초조함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지금은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할 때다.
혹여 잔류에 실패하더라도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서울의 투자는 계속되길 바란다. 어두운 밤길을 걷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그 시간을 인내한다면 밝은 해는 반드시 뜨는 법. 프론트가 의지를 잃지 않고 투자만 계속한다면 한국의 학원축구에서 벗어난 서울의 클럽시스템은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