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76. 전쟁과 IMF로 소환되는 가족의 몰락과 해체 ‘집을 떠나며’

입력 2018-12-03 08:56

비극의 가족사를 안고 ‘집을 떠나며’

연극 <집을 떠나며> (박장렬 작, 연출)는 국가와 사회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 받고 살아가는 절망적인 가족의 처절한 노랫소리이며 한국사회로 퍼지는 메아리다. 가족사(死)를 거세할 수 없는 아들(김천 분)의 꿈같은 기억으로 소환되는 가족의 몰락과 비극사를 투영한다. 베트남 파병군인으로 참전한 아버지(문창환 분)는 전쟁의 폭력과 씻겨낼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IMF 때 사업실패로 집을 7년 동안 떠나 돌아온 뒤로도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정신분열을 앓고 살아가는 폐인으로 전락한다. 작품은, 전쟁·국가 권력·자본의 무게로부터 분열되어 한 가족이 몰락하고 해체되는 현상을 그려내고 있다.

아내(김지은 분)는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몸을 팔면서 가족을 지켜내려고 애쓰지만, 정부인 해군 장교(정성호 분)과 외도로 집을 나가고, 딸은 엄마의 정부와 노골적인 사랑을 증오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아들은 집으로 배달된 가상의 인물인 이복누이 소설 <집을 떠나며>를 읽으며 가족사를 담담하게 소환하고 극의 종점에서 이복누이를 만나러 베트남으로 향하는 것으로 극은 설정된다. 거세할 수 없는 기억으로 소환되는 비극의 가족사는 베트남 전쟁을 돌아 한국사회 IMF 시대를 환기하게 하고 죽음의 공기(空氣)는 동시대로 향한다.

가족의 몰락과 해체, 한국사회 집의 균열은 이념 갈등으로 점화되고 60∼70년대 국가정책으로 파병된 군인은 전쟁의 역사를 돌아 오늘날 전쟁 신호음을 경고한다. 몸을 팔며 살 수밖에 없는 엄마는 삶의 불균형과 소외된 가족들을 투영하고 자본의 비대함은 70∼80년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재봉틀을 밝고 돌리며 살아야 했던 한국사회 어머니의 그림자를 비춘다. 반세기를 돌아도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죽음으로 박제되어 가는 한국사회 현상들이다. 반사된 가족사의 풍경에 국가 시선과 사랑은 전소되어 있고 사랑의 결핍은 죽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해체된 <집>을 나서며 희망의 도시로 떠날 뿐이다.

막장을 달리는 가족들의 부조리한 현상

연출은 이들 가족사의 풍경을 현재에도 유효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죽은 아버지를 소환해 비쳐내는 가족의 삶은 막장을 달리고 국가 권력과 사회로부터 차단된 외면과 소외는 죽음을 선택하거나 여전히 행방불명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폭력성을 그려낸다. 베트남 파병군인 있었던 아버지는 전쟁의 폭력과 잔혹성으로 정신장애를 일으켜 폐인(廢人)으로 살아야 했고, 한국사회 경제위기 신호였던 IMF는 수많은 가족을 해체 시키고 비극적인 가족사를 견뎌내야 했다.

사회로부터 개인과 가족의 삶은 몰락하고 전쟁의 폭력성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죽어있는 인간이다. 집과 가족은 사회와 정치 권력의 시선으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불균형으로 형성된 견고한 벽은 사랑이 퍼질 수 없는 사회구조이다. 한국사회를 떠나 희망의 나라로 가족들이 강을 건너는 아들의 꿈속 장면은 두만강을 헤엄쳐 자유의 나라로 전진하는 탈북민 가족을 연상시킨다. 강 경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논쟁은 세대갈등과 이념의 대립을 웃음으로 환기하며 분열된 정치 현상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대립과 분열의 현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소시키고 자유와 평화의 땅으로 헤엄쳐 갈 수 없는 죽음의 강이다. 갈등과 균열, 이념 갈등의 냉소적인 시선과 차이는 죽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강가이며 전쟁의 반복이다. 가족은 막장을 달리며 죽음으로 해체되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가족을 향하는 시선이 부재한 부조리한 현상이다.

전쟁의 역사, 유효한 폭력


<집을 떠나며>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기록했던 전쟁과 경제사를 환기하며 한 가족의 비극적 몰락을 아들의 기억으로 소환시키고 있다. 가족의 온기가 피어날 수 없는 사회와 국가 권력의 부재(不在)한 현상과 시선을 담아낸다. 정의와 진실은 인간을 배반하고 권력은 한국사회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폭력성으로 다가온다. <집을 떠나며> 공연 제목은 베트남에서 인기 소설가로 사는 이복누이로 설정한 인물이 쓴 소설 제목으로 설정된다. 가상의 설정이다. 왜 이복누이가 됐는지 친절한 설명이 없다. 다만, 아버지는 월남전(越南戰) 파병군인으로 전쟁 참전 당시 기억으로 소환되는 전쟁 임무는 베트콩을 사살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전쟁 당시 베트콩과 민간인을 사살하고 마을을 불태운 뒤에도 부대원 12명이 숲속으로 도망친 여자를 집단 성폭행한 기억에 멈추어 있다. 베트남 이복누이는 민간인 학살과 폭력의 역사에서 잉태한 핏줄의 연대기이며, 정신적 부채로 남아있는 한국사회 이복누이가 된다. 극 중 인물 해군 장교 남자(정성호 분)는 국가전쟁에 대해 “정당은 국가로 발전하게 되고, 국가들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가 전쟁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략) 사상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방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며, 생각을 뛰어넘는 예술을 선택해야 한다. 어쨌든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고, 인간들이 죽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예술이다.”라고 역설한다.

작가는 전쟁의 순환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파생되는 극단적 갈등의 현상으로 바라보고 정치와 정당도 이념 갈등으로 분열되어 전쟁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상기시킨다. 언어와 활자는 사상들을 대립시켜 분열의 사회로 점화되는 도구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예술’이며 무상의 마음, 무념의 생각으로 이념과 사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예술을 선택해 균열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의 가슴과 시선으로 불균형과 전쟁의 순환을 전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은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집 불빛이 응축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다. 국가·권력·역사와 전쟁·갈등과 분열사회·이데올로기와 정치·불균형과 소외 그리고 비대해진 자본주의 현상을 집합시키고 있다. <집을 떠나며>의 가족은 분열과 해체로 권력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거나 소외된 채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족사다. 기억의 재현으로 투영되는 무대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왕복하며 극 중 장면을 중첩하고 분할한다. 전쟁과 IMF 그리고 권력의 폭력성으로 가족이 몰락해 가는 극 중 구조는 난해함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대는 파노라마처럼 전쟁과 IMF를 거쳐 오늘날 살아가는 가족을 투영시키며 시대에 죽어가는 자들을 소환한다.

무대의 난해함으로 반사되는 가족의 균열과 몰락

아들의 기억과 시선으로 투영되는 한 가정의 가족사는 분열되고 파편화되어 있다. 가족사를 따라가면서도 그 틈으로 비치는 잔혹한 가족의 비극과 균열의 틈으로 등장인물 남자(해군 장교)를 가족을 몰락시킨 국가 권력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대는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분열성을 그리듯 파편화되어 있다. 온전하지 않은 균열된 가족, 베트남 참전 군인으로 IMF 때 사업이 망해버려 폐인이 되어 살아가는 아버지의 골방은 무대 뒤편에 외부세계와 고립되어 있고 재봉틀을 밟고 돌리며 억척스럽게 희생하는 엄마의 공간이 구분된다. 마치 70년대를 달려 현재를 살아가는 불빛은 죽음으로 꺼져있고, 재봉틀을 밝고 돌려도 밝아지지 않는 삶의 세계는 박제되어 있다.

중앙으로는 기억이 저장된 아들의 방으로 접이식 침대와 어수선한 생활용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균열과 갈등, 전쟁과 국가폭력, 국가와 자본 그리고 시대의 경제 환경에서 가져온 집의 몰락과 내면의 균열은 치유할 수 없는 가족사를 덜컹거리며 마주하게 된다. 흔들의자와 레코드플레이어는 시간과 기억을 환기하는 장소다. 친절하지 않은 무대 배치 사이로 거세되지 못한 꿈같은 가족사가 재현된다.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으로 씻어낼 수 없는 잔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의 집은 IMF로 망해버리고 가족은 해체된다. 아버지의 가출로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아내의 외도는 당당하고 살기 위해 몸을 팔면서도 몸을 팔 수밖에 없는 노골적이고 거친 19금 대사들이 아들 앞에서 쏟아진다.

<집을 떠나며>는 거세할 수 없는 잔혹한 기억으로 박제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 IMF, 해군 장교와의 만남, 엄마의 외도와 삶, 누나의 자살, 꿈속 장면 등 시공간을 초월해 파편화된 조각의 기억으로 툭툭 던져 놓는다. 다 역 해군 장교(정성호 분)는 제복을 입고 가족의 균열을 더 타격하는 권력과 폭력을 상징하고 때로는 딸의 남자로, 아내의 정부로 등장하면서 한국사회와 정치 현상, 이념과 갈등의 분열 현상들을 해설하는 신문 같은 역할까지 더 해지고 역할은 다층화된 폭력과 권력, 국가의 기호로 움직인다. 무대가 열리면 제복을 입은 해군 장교는 인종과 이념이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유튜브로 생중계되어 처형된 한 소녀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가폭력으로 자행된 죽음의 놀이는 무차별적인 테러와 공포, 전쟁의 잔혹성을 환기하며 베트남 전쟁과 비극의 가족사의 시간표로 돌아간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여자의 비명소리와 총소리로 아버지의 기억은 깨어난다. 남자의 총을 바라보며 베트남 전쟁의 상혼과 아내의 기억, 아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린 폭력성을 쏟아내고 아버지 다리를 불구로 만들어 놓은 기억은 꿈처럼 아들과의 대화로 재생된다. 특정한 장면들이 편집되어 저장되고 기억되는 것처럼, 무대는 기억의 파편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들을 제외하고 아버지, 엄마, 딸은 죽어있는 자이며 옆집 그녀는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여자다.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온전한 인물이 부재되어 있다. 채울 수 없는 사랑은 결핍으로 혈전 되어 삶의 궤도를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만이 숨을 쉰다. 삶의 둘레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성과 시선으로 벗어날 수 없는 벽이며 이들을 바라보는 정의와 진실은 한국사회 수면으로 가라앉아 있는 현상들이다.

거세 될 수 없는 기억. 불편함과 폭력의 사이


엄마는 이웃집 아들(새벽)과 모텔로 향하고, 그의 아버지(태양)의 협박으로 공동전선을 만들며 변태적인 섹스를 한 얘기를 아들한테 꺼내 놓으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함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로 사회와 국가의 폭력성을 거칠게 밀어붙여 불편함을 더 자극한다. 불편함과 폭력의 사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연출의 시선은 마치 그 대화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폭력의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의도된 설정이다. 인간으로 특정시키지 않은 ‘새벽’과 ‘태양’은 아내 삶을 공전하는 둘레다. 돌고 돌아도 삶은 폐허가 되어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겉도는 시간이다. 지구의 인간은 폭력적으로 아내를 타격하고 자본은 몸을 팔아도 삶의 밑바닥을 도려낼 수 없는 세상이다. 외도하고 집 밖으로 전전하며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선물로 꺼내 놓은 청바지는 어린 시절 아들 옷으로 멈추어져 있다. “살기 힘들다고 모든 엄마가 정부가 되지는 않아. 그런데 엄마는 정부에다 창녀까지 되었잖아” 아들은 울부짖고 엄마는 “날 탓하지 마. 아빠를 망하게 한 회사를 욕하고, 회사를 망하게 한 대통령을 욕하고, 대통령을 보좌한 멍청한 정치가들을 탓하란 말이야”라고 받아친다.

아가멤논과 클리 템네스트 여왕, 엄마를 죽인 오레스테스 얘기가 아들과 엄마의 대화로 더해지고 아들은 모든 걸 끝내고 집을 떠나야 한다며 나무총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아버지는 쓰러진 아내를 잡고 ‘진정한 사랑’을 외치며 아들을 야구방망이로 패기 시작한다. 아들에게 책을 던지며 읽으라고 쏟아내는 가족사는 진해로 벚꽃 구경을 떠난 얘기와 해군 장교를 만나게 되는 엄마의 외도, 해군 장교를 사랑하는 딸이 겹쳐지고 무대는 이원화된 장면으로 혼란스러워진다.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자행한 집단 강간과 시체가 넘쳐나는 전쟁의 역사를 점화시킨 국가를 외계인으로 환치시킨다. 강간과 전쟁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여자들과 민간인 남자들 얘기를 대사로 쏟아내며 “전쟁은, 사랑도 인간도 감정도 사라지게 했다”라고 울부짖는다. 외계인은 전쟁과 폭력의 가해자이며 베트남 전쟁의 점화를 상기할 수 있는 국가로 은유 된다. 극의 마지막은 두 여자를 사랑한 해군 장교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딸의 일탈을 그려내고 야구방망이는 정의에 방망이로 둔갑해 해군 장교를 향한 총소리를 내며 연극은 현실로 돌아온다.

<집을 떠나며>는 아내의 외도를 마주하는 아버지의 시선, 베트남 전쟁의 잔혹한 고백, 해군 장교의 폭력성과 성폭행, 강을 건너는 가족들의 꿈의 장면과 엄마의 정부와 딸의 일탈적인 행위와 자살, 엄마와 아들의 대화를 교차적으로 재생시켜내며 전쟁과 차가운 현실은 모두 죽어야 끝이 나는 잔혹한 전쟁의 연속이며 시간으로 돌려놓는다. 치유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내면의 분열은 사랑이 부재한 국가 권력과 폭력의 사이로 자라나고 떠나야 할 집이 된다. 극의 마지막에 채워지는 <난 아직 사랑을 모른다>( 작사 박장렬, 작곡 박진규, 노래 박선옥> 노랫말처럼 한국사회 빛이 비치지 못하는 집은 비극으로 몰락되고 해체될 수밖에 없다.

불편함은 상상력을 확장하고 배우는 놀이로 최전방을 달린다.


극단 반의 <집을 떠나며>는 친절하지 않은 연극이다. 연극 문법은 이탈되고 파편화된 가족사의 기억 조각은 불편함을 밀어 넣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연극성의 조미료가 강하다. 때로는 놀이처럼 극 중 장면을 만들고 간결한 장치로 분열된 집은 전쟁의 역사와 국가폭력으로 기호화된다. 무대는 피폐해진 인간의 몰락과 가족의 비극적인 해체, 폭력적인 국가와 권력, 소외된 인간을 더 타격하는 사회현상을 인간의 몸부림으로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형성시킨다. 연극은 시공간의 궤도를 이탈하면서도 파쇄기로 흘러나온 찢긴 종이 더미로 희망의 나라로 전진할 수밖에 없는 강가의 경계를 만들고 아들은 아버지와 엄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잔혹한 가족사의 기억을 거세하고 불안전하고 균열 된 <집>을 떠나 인간과 국가의 온기가 숨을 쉬는 촘촘한 집을 찾아 떠나면서도 한국사회 집이 그리워지는 역설의 시선을 담는다.

배우들은 박장렬 작, 연출이 그려놓은 가족사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활보하며 시공간을 역주행하고 왕복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잡아내고 장면을 응집하는 집중력을 보인다. 연기는 아픔을 스며들게 하고 사랑의 온기는 혈전 되어 있는 사회를 담아낸다. 한·미 공동전선으로 형성된 베트남 전쟁역사를 한국사회 가족사로 연결하고 전쟁을 연대적 책임으로 바라본다. 특히 이번 연극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극을 끝까지 몰고 가는 역할을 했다. 정성호는 극의 균형을 잡았고, 문창성(아버지)은 내·외면의 경계를 연기로 유지하며 아들의 기억에서 도려낼 수 없는 아버지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기대되는 배우다. 김지은(엄마)은 노련한 연기를 보였고 김천(아들)은 엄마를 향해 “사랑했다고 모두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지 않아”하며 감정을 응축시키는 연기의 리듬을 보여주었다. 김진영(딸)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집을 떠나며>는 볼만한 연극이다. 다만, 분열된 무대 공간과 다층화된 남자 장교의 역할로 사화와 국가 권력을 환기하는 개입을 일부 도려내면 가족사의 환부도 명확해질 수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사진 제공, 김명집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