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안희정 막기 위해” 옐로카드 든 ‘보통의 김지은들’… 항소심 시작

입력 2018-12-01 12:49
최현규 기자

‘보통의 김지은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에게 경고했다. 안 전 지사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옐로카드’를 뜻하는 노란색 팻말에 ‘더 많은 ‘안희정’을 막기 위해’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김지은’입니다’ ‘존재만 하는 위력은 없다’라고 적었다.

위력을 이용해 자신의 수행비서인 김지은씨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는 안 전 지사의 항소심 절차가 시작됐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이날 오후 3시30분 안 전 지사에 대한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심리가 시작되기 전 양 측 쟁점과 계획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피고인 출석 의무는 없다. 안 전 지사는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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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검찰 측은 1심 재판부가 “위계 관계는 맞으나 강제성은 없었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과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위력’의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며 “증거와 진술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를 간과하며 배척했다. 심리가 미진해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술 신빙성을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가 있다”며 “김씨의 휴대폰 메모 등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 측은 “원심이 피해자 진술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객관적 증거 정황에 따른 것으로 무죄 판단은 타당했다”고 반박했다. 또 “이 사건 쟁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라고 강조했다. 항소심에서도 위력에 대한 행사 여부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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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에는 김씨가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나서서 진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찰은 총 증인 5명을 신청했다. 1심에서 증인으로 나섰던 김씨 등 3명이 포함됐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신문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측은 “법원이 새 증거를 판단하고, 직접 신빙성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안 전 지사에 한 신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안 전 지사의 주장을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심에서 안 전 지사는 신문을 받지 않았다. 김씨 측 정혜선 변호사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는 1심 법정에서도 12시간 동안 신문을 당했으나 안 전 지사에게는 어떠한 신문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었다.

재판부는 다음달 7일 오후 2시 30분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연 뒤 본격 재판을 시작할 예정이다.

2심서는 ‘성인지 감수성’ 관점 해석 나올까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상하관계를 이용해 수행비서 김씨와 4차례 성관계하고 추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8월 1심은 안 전 지사와 김씨 사이에 업무상 위력이 행사될 수 있는 관계였다고 보면서도 강제성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여성계를 포함해 법조계 내부에서도 1심 재판부 판결에 ‘성인지 감수성’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현행법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경우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는 유형적·무형적인 힘’과 ‘폭행·협박 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포함한다. 때문에 ‘위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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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한 판결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항소심 과정에서는 대법원도 언급한 성인지 감수성이 제대로 반영돼 1심 판단서 제기된 오류를 되돌려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김지은’입니다”

이날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앞에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적 자기 결정권과 위력에 대한 몰이해로 점철된 결과”라며 “안희정에게 유죄가 선고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여성은 반드시 사법부에 그 죄를 물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성폭력이 묵인되던 시대는 끝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무죄 선고는 ‘보통의 김지은들’이 겪었던, 앞으로 겪게 될, 수 많은 차별과 폭력을 국가가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김씨를 비롯한 미투 운동에 나선 모든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