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보수와 진보 아울러 통일 준비를…과학·보건 중심 인적교류에 주목”

입력 2018-12-01 08:26
한국교회 남북교류 협력단 정책토론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열렸다. 협력단 공동대표인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오른쪽)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국교회가 통일 시대를 오롯이 맞이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새 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진행됐다. 대북제재가 여전한 현실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교회가 슬기롭게 이끌기 위해서는 과학 및 보건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교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교회 남북교류 협력단은 30일 서울 종로구 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민의 참여를 통한 한반도 화해와 상생’이란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협력단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교단을 주축으로 민족화해와 민간교류에 앞장서기 위해 지난 8월 발족한 협의체이며 첫 번째 사업으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협력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지형은 서울 성락성결교회 목사가 ‘바람직한 남북 교류를 생각하며 한국 교회를 성찰함’이란 글을 통해 주제 발제를 맡았다. 지 목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독일 유학시절을 회고하며 동독 출신으로 독일 통일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베르너 크레첼 박사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지 목사는 “크레첼 박사는 통독 과정에서 서독 쪽이 저지른 뼈아픈 실수 중 하나를 언급했다”면서 “바로 동독 쪽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그들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복음을 사회에 적용하는데 약한 한국교회의 특징도 언급했다. 지 목사는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복음의 개인적 정체성에 집중력이 유별나게 강하다”면서 “반면 복음의 사회적 연관성에 약하다”고 했다. 이어 “통일의 여정과 관련해 한국교회가 인도적 인륜도덕, 창조의 생태윤리, 법치의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등을 훈련하지 않으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 목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독일보다는 어리둥절하지 않게, 점진적 평화적 복음적 상생의 통일을 준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 남북교류 협력단 정책토론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열렸다. 협력단 공동대표인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오른쪽)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요령이 필요하다. 엄주현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이 이에 대해 조언했다. 엄 사무처장은 먼저 북측의 니즈 파악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며 “북측은 공동번영을 위해 장기적이고 책임성 있는 사업을 원한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 체제는 과학기술을 토대로 지식경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이루겠다는 지침과 노선을 설정했다”고 소개하며 “보건부문 발전 중기전략계획 2016~2020을 발행했다”고 전했다. 이런 북측의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일수록 추진에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엄 사무처장은 또 “특히 제재국면에서 인적교류는 상대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과학기술 및 지식의 접목을 위한 인적교류 활성화 촉진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북한 전역에 포진된 경제개발구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거나 “이전에 추진된 대북 사업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게 진행되고 북측 방향과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를 대표해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의 이창열 상근회담 대표도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국제사회 대북제재를 고려해 남북교류는 단계적 점진적으로 추진될 것이며 국민적 공감대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구체화 할 것”이란 원칙론을 이야기했다.

토론회에는 가톨릭 교회의 참여도 있었다. 대북사목을 해온 박창일 평화3000 운영위원장은 가톨릭 내부에서도 만연한 북한 교인들에 대한 회의주의를 지적했다. 박 신부는 발제문과 설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2000년 1월 평양을 처음 방문해 북한 유일 성당인 장충성당에서 100여명 북한 신자와 미사를 드렸다. 전력 사정이 어려워 희미한 전등과 온기 하나 없는 성당에서 손을 호호 거리며 기도 드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신부로서 많은 미사를 봉헌하지만 그날의 미사는 감격스러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주교님 한 분을 우연히 만났다. 언론을 통해 나의 방북을 보셨다고 하시면서, ‘박 신부, 장충성당에서 미사했어? 그 사람들 진짜 신자 맞아?’하고 물으셨다. 많은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들이 장충성당 신자들이 진짜 신자인지, 북한 당국에서 성당에 보낸 가짜 신자인지 궁금해 했다.
그 주교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주교님 저희 본당 교적에 3000명 신자가 있는데, 그중에 진짜 신자가 몇 명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일 지키면 진짜 신자인가. 냉담자는 진짜 신자가 아닌가. 신부와 친하면 진짜고 조용히 지내면 가짜인가.
장충성당에서 만난 북한 신자는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고, 전쟁 전부터 신앙을 가졌던 분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수녀님을 모시고 평양을 방문한 적 있는데 북한 신자들은 전쟁 이후 신부님들은 봤지만 수녀님을 처음 만났다. 수녀님 손을 잡고 발을 동동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북한 신자들의 눈에서 그들이 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