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뉴스] “6살 아들 앞에서 흉기 들고 살해 위협한 남편, 안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입력 2018-11-30 17:55 수정 2018-11-30 21:08
뉴시스

가정폭력을 피해 몇 달 전부터 아들과 보호시설을 전전하고 있다는 A씨. 그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며 남편을 안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간 남편의 폭행이 있을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A씨를 향한 남편의 폭력은 꽤 오래 전부터 지속돼 온 모양입니다. 보호시설에서는 3월부터 9개월째 살고 있는데, 남편에게 살해위협을 받아 집을 뛰쳐나온 뒤부터라고 합니다. 당시 남편은 A씨를 무차별 폭행하면서 “죽어”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6살 난 아들이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요.

남편은 A씨의 목을 조르다 급기야 흉기를 꺼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면서 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또 A씨가 신고를 하려고 집을 나가자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A씨를 추가 폭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남편은 작게는 폭행, 크게는 살인미수 혐의로 처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남편을 형사사건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했습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면 남편은 형사처분을 받지 않고 범죄전력도 남지 않습니다. 전문기관에서 가정폭력 재발방지 교육 등을 받거나, 심할 경우 접근금지 명령 등이 내려질 뿐입니다.

A씨는 “남편은 올해 초 이미 임시조치 결정을 한 차례 받은 적이 있으나 폭행은 멈추질 않았다”며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청원한다”고 밝혔습니다.

A씨 외에도 가정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은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 규모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 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지난 7일 가정폭력 신고가 올해 초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20만 2826건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절도(19만 2649) 신고를 앞지르는 수준입니다. 가정폭력이 살해 등으로 이어지는 범죄 페미사이드(여성살해)는 지난해에만 55건이 벌어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명 꼴로 남편의 손에 여성들이 죽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인에게 살해 당한 여성(26건)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더 늘어납니다.

그러나 경찰의 대책은 안이합니다. “가정폭력은 가정사”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가정폭력 신고는 총 27만건이었으나, 가정폭력 사범으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된 가해자는 4만70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신고 건수의 5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더욱이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혔는데도 기소된 비율은 9.6% 수준입니다.

정부는 최근 가정폭력특별법을 고쳐, 앞으로 가정 폭력 가해자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 통화 금지’ 같은 법원 조치를 어겼을 때 징역 등 형사처벌을 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가정폭력 사건을 전담으로 다루는 가정폭력 전담 법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정법원이 ‘온갖 사건 중 하나’로 가정폭력을 다룹니다. 가정폭력 사건 전담 판사도 지방법원마다 1명에 불과합니다. 검찰은 2013년 ‘공인전문검사’ 제도를 도입하고 검사들이 분야별로 전문성을 키우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전체 검사 2000명 중 이 문제를 전공으로 택한 검사가 단 1명뿐입니다.

A씨는 “내겐 가정이 지옥인데, 경찰은 항상 ‘가정을 지켜라’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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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