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반대를 내세우며 연일 강경 태도를 보여온 전국 단위 사립유치원 단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내부에서 분열 움직임이 본격 시작됐다. 이덕선(사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 ‘유치원 폐원’까지 내세우며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 지도부에 한유총 산하 최대조직인 서울지부가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다. 그러나 막상 내세우는 주장은 기존과 다르지 않아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유총 서울지부는 30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조희연 교육감과 만나 면담했다. 한유총의 가장 큰 몸통이라 부를 수 있는 집단에서 ‘머리’ 역할을 하는 지도부에 공개 항명을 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향후 한유총 내부에서 서울지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단체가 독립해 나올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한유총 내부의 불협화음은 전에도 있었다. 한유총은 당초 국·공립유치원 확대정책 반대와 누리과정 지원금 확대, 사립유치원 감사 중단을 내세우며 지난 9월 18일과 같은 달 25~29일 집단 휴업을 시도했으나 온건파인 최정혜 한유총 당시 이사장이 극적으로 교육부와 협상을 타결하면서 이를 철회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이 강경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시 휴업 선언과 철회가 되풀이됐다.
결국 최 이사장은 강경파의 공세에 지난달 16일 사임했다. 이 강경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지금껏 박용진 3법 반대 흐름과 29일 한유총 광화문 시위까지를 주도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다. 이 비대위원장은 다음달 열릴 신임 이사장 선거 후보등록에 지난 25일 단독 응모해 당선이 유력하다.
이 비대위원장을 수장으로 내세운 한유총은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단체 폐원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반대해왔다. 박용진 3법은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지원금이 아닌 보조금으로 바꾸고, 사립유치원이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해 회계 항목을 세부적으로 입력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사태 초기 여야는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한목소리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박용진 3법이 올라온 뒤에도 자유한국당이 졸속 해결 우려가 있다며 자체안 내놓길 미루면서 논의가 늦춰진 상태다. 한국당은 29일 오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한유총의 입장을 반영해 학부모 분담금을 유치원 자체의 별도 회계로 관리하게 함과 동시에 국가지원금의 보조금 전환에 반대하기로 결정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을 계기로 한유총 온건파가 정부와 협상에 나서더라도 그 과정이 순탄할지는 불확실하다. 박영란 한유총 서울지회장은 “교육청과의 협상 테이블에 언제든지 응하겠다”면서도 “사립유치원에 맞는 에듀파인이 만들어져야 수용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한국당이 제시한 별도의 회계시스템을 연상케 하는 제안이지만 이에 대한 입장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은 “무상교육을 실현해달라”고도 말했다. 요구대로라면 별도의 회계시스템을 적용받으면서도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받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회장은 “저희 입장은 한유총 입장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좀 더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박용진 3법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폐원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교육청 관계자를 통해 했으나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또한 “조 교육감이 강조해온 ‘선 교육 후 감사 체제’에 적극 공감하지만 사립유치원(에 맞는) 에듀파인이 적용되는 시점부터 시행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사립유치원 재무회계규칙이 적용되는 올해를 감사 기준 시점으로 해달라고 덧붙였다. 유치원 방과 후 교육을 적극 장려하고 정보공시 누락을 전폭 수정할 기회를 달라는 것, 원비를 현실화해달라는 안도 요구사항에 넣었다.
조 교육감은 “중요한 건 한유총이 대화를 하려하는 자세도 없었는데 이 분들은 (별도의) 첫 입장표명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날 면담에 의의를 부여했다. 이어 “우리 교육청과 힘을 합쳐 유아교육을 더욱 책임성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김남희 변호사는 “사립 유치원에 맞는 에듀파인만 수용한다는 건 현 에듀파인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무상교육 실현해달라는 건 더 많은 지원을 달라는 것”이라면서 “결국 관리감독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더 많은 지원을 달라는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같이 논의를 하고 학습권 침해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자체는 의미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