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이)오늘 통과 안 되면 문제 생겨요?” 미투 법안 보며 야당 의원이 한 말

입력 2018-11-30 12:59 수정 2018-11-30 13:09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미투법안 발의안 처리 촉구, 직무유기 국회 규탄기자회견'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 등 참가자들이 조속한 미투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1주일을 못 참습니까. (법안이) 오늘 통과가 안 되면 문제가 생기나요?”
지난 28일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을 다음 달 3일에 있을 소위원회로 넘기면서 한 말이다. 해당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미 심사가 끝난 법안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상임위 의견을 존중하자’며 통과를 주장했지만 해당 법안은 끝내 법사위에 계류됐다.

이를 두고 여성단체들은 ‘미투 법안’을 안일하게 여기는 국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반영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지난 2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 법안 100여개 중 단 5∼6개만 통과됐다’며 국회를 규탄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방금 여·야 간사를 만나고 왔는데 ‘발의된 미투 법안이 워낙 많다 보니 연구가 필요해 연내 관련 법안들이 더 통과되진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며 “연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국회는 그간 수많은 법안을 발의만 하고 정기국회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이제 와서 검토하겠다고 하나, 직무 유기다”라고 말했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성폭력 성희롱을 일상적으로 당해왔던 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해 거리로 나왔던 게 올해 초 ‘미투 운동’의 실체”라며 “당시 국회는 여성들의 고통에 답하기라도 하듯 여러 법안을 내놨지만 정작 통과된 법은 극소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희롱,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조속한 법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가장 먼저 지금의 강간죄 구성요건을 바꾸는 법안이 통과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현행법은 피해자가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협박, 위협, 위계 등의 상황에서 이뤄진 성관계에 한해서만 강간죄로 인정한다”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야말로 해당 법의 맹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에서도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협박뿐 아니라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억압한 부분을 고려해 개정하라고 권고했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고죄, 명예훼손 등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제도의 맹점도 지적됐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팀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죄 등 역고소가 남발돼 ‘용기 있는 말하기’를 막고 있다”며 “관련법을 개정해 피해자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일부는 해당 조치가 ‘거짓 미투’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한다. 그러나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범죄의 피해자가 고소·고발을 해야지만 공소 제기 가능하다는 규정)이 폐지될 때도 ‘꽃뱀이 많아져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공격이 있었지만, 무고사범에 대한 통계 자체가 없을 정도로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손영주 서울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올해 초 ‘성희롱 방지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회사 대표가 성희롱을 했을 때 처벌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직장내 성희롱은 가해자에 대한 제재가 사업주의 징계에 맡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열린 국회 본회의에선 ‘리벤지 포르노’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바뀐 법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찍어 연인에게 보낸 영상물이 이별 뒤 유포된 경우 유포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앞으로 ‘몰래 카메라’(몰카) 촬영자뿐 아니라 몰카 영상을 다운로드한 뒤 다시 유포한 사람도 처벌을 받는다. 돈을 벌기 위해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면 무조건 징역형에 처해진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해당 개정안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이용한 합성물 유포에 대한 처벌, 음란물을 유통하는 웹하드 업체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한 규정은 여전히 빠져있다. 국회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요즘 여성과 남성 간 갈등이 조장된다고 하는데 이건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며 “(사회의)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국민이 권력을 위임해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 갈등과 분열은 밥값 못하는 정치인들이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