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리는 멜로의 탄생이다.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손을 한껏 오므린 채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톱 배우 송혜교 박보검의 주연 캐스팅만으로도 방송 전부터 숱한 화제를 불렀던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연출 박신우, 극본 유영아)의 인기가 뜨겁다. 2회에서 시청률 10.3%(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28일 첫 방송을 한 지 단 2회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드라마 중 최강자로 우뚝 섰다.
사랑스러운 송혜교와 청포도처럼 상큼한 박보검, 둘의 빛나는 호흡
‘남자친구’는 정치인의 딸로 태어나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차수현(송혜교)과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김진혁(박보검) 사이의 로맨스를 담백하게 그려나가는 정통 멜로물이다.
처음엔 우려도 있었다. 송혜교와 박보검, 장면을 통째로 끌고 가는 두 배우의 아름다운 외모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12살 차이인 두 배우의 로맨스가 화면 안에서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이 있었다. 박보검이 송혜교의 배우자 송중기와 같은 소속사이자 평소 절친한 사이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기우라는 것이 밝혀졌다. 박보검은 극의 일선에서 특유의 상큼함으로 설렘을 고조시킨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멜로물의 한계를 영리하게 피해간다. 2회의 하이라이트는 회식하고 난 후 김진혁의 술주정이었는데, 과장돼 보일 수 있었음에도, 박보검은 연기력과 청량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귀엽게 표현해냈다.
송혜교는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오랜 멜로 연기의 내공이 극 곳곳에 묻어난다. 동화호텔 대표이자 호텔 전문가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내비치는가 하면 김진혁 앞에서는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표현해 시청자들의 설렘을 유발한다.
두 배우는 둘 다 빛나려고 하기보단 극의 완급에 맞춰 옆을 든든히 보조해주고, 본인이 극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땐 적극적으로 치고 나간다. 각자가 가진 연기력과 두 배우의 호흡은 나이 차이 등 초반 우려를 불식하고 드라마에 몰입감을 더하는 데 성공했다.
섬세하고, 세련된 영상미 with 쿠바
지난 7~9월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스터 션샤인’(연출 이응복, 극본 김은숙)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부분 중 하나는 특출한 영상미였다. 이 연출은 구한말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들의 일대기를 매회 한 폭의 영화처럼 담아내면서 극본이 가진 작품성을 한층 끌어 올렸다.
‘남자친구’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연출을 맡은 박신우 감독은 지금껏 드라마 ‘질투의 화신’(2016) ‘엔젤아이즈’(2014) ‘야왕’(2013) ‘유령’(2012) 등을 연출하며 디테일이 살아있는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박 감독은 감옥과 같은 성안에 갇혀 사는 차수현과 용기 있게 손을 내밀어가는 김진혁의 로맨스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내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국내 드라마 최초로 진행된 쿠바 로케이션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쿠바가 가진 고풍스러운 공간들과 화려한 색감, 아날로그적인 감성들은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주며 둘의 로맨스에 특별함을 부여했다.
쿠바는 사업차 이곳에 온 차수현과 배낭여행 중인 김진혁이 만나는 1회의 주요 배경이 된다. 둘은 말레콘 비치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곳의 아름다운 석양은 드라마가 끝난 뒤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는 등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앞으로 국내에서 진행될 두 배우의 로맨스가 어떤 방식으로 화면 속에 담길지 기대가 모인다.
멜로물이 가진 ‘뻔한’ 남녀 구도의 전복
‘남자친구’는 정통 멜로물이라는 감성은 기본으로 가져가지만, 멜로물 장르의 캐릭터 구도가 가진 특유의 진부함만큼은 피했다.
기존 멜로 드라마들에서 무게중심은 여성보다 남성 인물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씩씩하지만 가녀린 여성이 재력과 힘을 가진 남성 주인공의 조력에 기대 성장하는 방식의 서사는 ‘신데렐라 신드롬’의 반복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차수현과 김진혁은 기존 드라마의 남녀 캐릭터가 부여받던 성격을 뒤바꿨다. 차수현은 국내 최고의 호텔인 동화호텔 운영자로 돈이 많고 똑똑할 뿐만 아니라 극 초반부 로맨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반면 김진혁은 티 없이 맑은 순수함과 자유로움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캔디형’ 캐릭터다.
최근 높은 화제성 속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연출 송현욱·남기훈, 극본 임메아리)도 원작엔 없었던 야망가 강사라(이다희)와 순수남 류은호(안재현)의 로맨스를 추가했는데, 둘의 관계도 이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기존 드라마의 남녀관계를 전복시킨 캐릭터 구도는 드라마의 주요 시청 타깃인 10~30대 여성들의 욕구에 잘 들어맞는 동시에 최근 사회적 변화와 트렌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새로운 설정이 단순한 관계 전복에 그칠지 멜로물 내의 새로운 캐릭터 구도를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