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난소암 가족력 있으면 ‘유전자 검사’ 꼭 받아라

입력 2018-11-29 16:25

주부 김모(51)씨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다 유방에 혹이 발견돼 정밀검진 결과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앞서 김씨의 이모도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과거 김씨의 할머니는 난소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암 가족력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 김씨는 자매와 자녀들과 함께 병원에서 유전성 암에 대한 유전자패널검사(NGS)를 받은 결과,자신을 포함해 여동생과 딸에게서 유방암과 난소암의 원인 유전자로 알려진 ‘BRCA1’ 돌연변이가 검출된 것을 확인했다.

BRCA는 유방암 유전자(BReast CAncer gene)의 약자다. BRCA1과 BRCA2 두 개의 유전자를 의미하는데, BRCA 유전자 자체는 암이나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일을 한다. 즉, 암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종양 억제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종양 억제유전자의 DNA가 손상되고 정상 작동하지 않아 돌연변이가 나타나게 되면 암을 막아줄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외부 자극에 약해져 암이 발생하게 된다.

대부분의 유방암과 난소암은 후천적으로 발생하지만 5~10% 가량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생긴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56~87%, 난소암은 27~4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결과에 따르면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70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66~72% 정도이며, 난소암의 경우 70세까지 약 16~44%까지 암 발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BRCA2 유전자 변이는 유방암과 난소암 외에도 췌장암, 전립선암, 담낭암, 담도암, 대장암, 위암 등 다양한 암의 위험도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모 중 한명이라도 BRCA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경우 변이 유전자가 유전될 확률이 50%로 높다. 이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 친척(고모, 삼촌, 이모, 조카) 중 유방암이나 난소암이 진단되거나 BRCA 변이가 발견된 경우 가족이 모두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 관련 유전자들로 BRCA 유전자 외에도 ATM, BARD1, CDH1, MSH2, NF1 등 수십개의 유전자의 변이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유전자 검사도 필수적이다.

BRCA 등 유전자의 변이에 대한 검사는 고전적으로 시행하는 염기서열 검사가 있었으나 이 방법으로는 수십 개의 유전자 변이 분석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비가 소모되어 최근에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을 이용해 30여개 유전자의 변이에 대한 검사를 동시에 한번으로 가능하게 됐다.

NGS 검사는 적은 양의 검체로도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하고 수십만 개의 반응을 동시에 진행해 유방암, 난소암 등의 유전성 암에 대한 발병 가능성을 진단한다. 질병의 진단, 치료약제 선택, 예후 예측 등에 도움되는 수십 개의 유전자 변이 여부를 한꺼번에 분석해 확인할 수 있어 개인별 치료 효과를 높이는 등에 활용 가능하다.

중앙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혜련 교수는 29일 “인간은 30억개의 염기서열과 약 3만~4만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 유전자들이 여러 질병의 진단, 예후, 치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또, 하나의 질환에도 여러가지 유전자가 관련있어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질환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NGS 검사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분석 가능하며 비교적 정확한 대량의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검사 활용도가 넓은 가운데, BRCA를 포함한 30여개의 유전자에 대한 유전성암 검사가 가능하다”며 “의미있는 유전성암 유전자 변이를 발견해 진단과 치료에 이용하고 발견 변이를 이용한 가족들의 유전검사, 질병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전성 유방암 및 난소암의 유전자 검사 대상은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나 가족력이 없지만 본인이 40세 이전에 진단된 경우, 가족력 없이 난소암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 경우, 양쪽 유방에 암이 발생한 경우, 남성 유방암 환자, 여러 장기에 암이 발생한 환자 등으로 이런 환자는 돌연변이를 보유할 확률이 일반적인 유방암과 난소암 환자보다 높다.

NGS 검사를 통한 BRCA 등 유전성암 유전자 변이 검사는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DNA를 이용해서 시행하게 되는데, 변이된 염기가 있는가를 확인해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6개월 간격으로 전문의에 의한 유방검진과 매년 유방촬영, 초음파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1년에 2회 정도 산부인과를 방문해 질초음파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유방암 예방을 위해 타목시펜이나 랄록시펜을 복용하고 난소암 예방을 위하여 피임약을 복용할 수 있다.

또 NGS 유전자 검사의 경우,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생과 진행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발견해 선택적으로 억제시키는 암 표적 치료에 활용이 가능하다.
실제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302명의 유방암 환자 중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를 대상으로 표적 치료(올라파립)를 시행한 결과, 표준 치료법에 비해 유방암 진행 위험률이 42% 낮아진 것을 확인했다. 유전자 표적 치료가 유방암 진행 위험률을 낮춘 대표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발표된 BRCA 유전자 돌연변이 난소암 환자 56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루카파립(Rucaparib)이라는 ‘PARP(암 발생에 관여하는 폴리중합효소)억제제’로 BRCA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한 표적치료를 시행해 질병 진행 가능성을 65% 가량 감소시키는 고무적인 결과를 내놨다.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희준 교수는 “기존에 일반적인 유방암 및 난소암의 항암 치료제를 선택할 때 환자 개별적으로 치료 효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어 유사한 암종에 시험해보고 경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나, NGS 검사를 바탕으로 적절한 유전자 표적 치료를 시행하게 됨으로써 항암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NGS 검사는 지난해부터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50%로 낮아졌다. 보건복지부로부터 NGS 유전자 검사기관으로 승인된 전국 52개 병원에서 위암·폐암·대장암·유방암·난소암 등 고형암 10종과 혈액암 6종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