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중앙교회(정성훈 목사·부기총 대표회장) 예람비전센터 내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은 근현대 소장품 특별전 ‘근대와 현대와 만남-시간 속 부산과 사람들’을 내년 1월 26일까지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은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총회 개최에 맞추어 세계 각국의 종교계 지도자들과 행사 참가자들에게 한국 교회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2013년 10월 6일 개관했다.
2015년 3월에는 부산시 제17호 박물관으로 등록되어 전문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박물관은 한국 및 세계 기독교의 발전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초창기 한국 교회의 유산인 고성서를 비롯해 잡지·사진,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성서와 찬송가 등 4000여 점을 비롯해 희귀한 일반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전시실은 한국관, 세계관, 한국민속관, 특별전시실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관과 세계관은 기독교 관련 소장품을 국내외로 분류해 기독교 역사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민속관은 기독교계통의 소장품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의 특성을 살려 한국 근대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호응이 높다.
박물관의 관람동선을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1911년에 발행된 ‘구약전서’ 제2권이 보인다. 1911년 ‘구약전서’는 한글로 발행된 최초의 구약전서로, 대한성서공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같은 판본 1질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671호로 지정됐다.
불에 탄 ‘천로역정’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사로잡는 전시품이다. 1895년 처음 발행된 ‘천로역정’은 게일선교사가 한글로 번역했다.
한글로 번역된 본문과 함께 수록된 삽화에서 한국식 복장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삽화들은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그린 것으로 밝혀져 사료적 가치는 물론 기독교의 토착화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왕길지 선교사가 선교현장을 다니며 사용한 풍금은 전시실 한곳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한말 부산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던 그가 마차에 싣고 다니며 선보인 악기인데, 1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견디며 지금도 연주가 가능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1884년 중국 심양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된 ‘마태복음’ 쪽복음 중 한 장이 전시되어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옛 한글로 정성껏 인쇄된 성경 한 장에 담긴 사연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당시 금서였던 한글번역 성경을 국내로 밀반입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헌신했던 우리 선조들의 신앙 열정과 복음 사랑에 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양피지 악보는 한국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전시품이라 이채롭다. 현대 악보 표기와는 다른 형태에 라틴어로 정리되어 있는 ‘그레고리안 찬트’의 음률은 어떠한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은 개관 이후 ‘호주선교사 사진전시회’, ‘하나님의 위대한 유산-하늘의 말씀, 땅의 찬미’,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전-오직 성경’ 등 매년 특별전을 개최해 전문 연구자들부터 일반주민에 이르기까지 관람객들의 다양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이를 통해 기독교 문화와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복합문화시설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 격동의 시간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시간을 조망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부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신문물 유입의 중심지인 항구도시 부산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소개해 로컬리티 인문학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광무5년 호적(1901년)과 소화7년 호적대장(1932년)은 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호구(戶口) 재원을 파악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인구조사를 통해 작성한 호적대장은 혼인․출산 및 양자녀 결연으로 인한 법제적 가족을 호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적 인구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에서 당시 식민지 한국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인들은 신교육을 받아들이며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실력을 양성하고자 노력했다.
신식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성장하고자 노력한 한국인의 의지를 공립보통학교의 졸업증서 2점과 중학교 졸업증서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특히 일본으로 유학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한국인이 수여받은 졸업증서에는 졸업생의 이름 앞에 ‘조선(朝鮮)’이라 표기되어 있어, 일본인과 한국인의 구별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찰스 어빈(Charles H. Irvin 한국명 어을빈漁乙彬, 1862~1935)은 미국 북장로교 소속으로 1894년 부산으로 건너와 약 17년간 의료선교활동을 한 외국인 선교사이다.
그는 선교직 사임 이후 어을빈의원을 개원하고, 어을빈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해 의료활동으로 지역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만든 만병수(萬病水)는 만병통치약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는 만병수로 얻은 이익금의 일부를 독립자금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만병수와 기타약제를 홍보하기 위해 1919년에 제작한 안내서가 특별전 전시실에 소개되어 있어 1910년대 광고지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혼란의 중심에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들도 눈길을 끈다. 미군용통신선인 PP선(일명 삐삐선)으로 만든 장바구니는 물자가 부족한 시절 사소한 모든 것을 재활용하여 일상을 살아가던 우리의 삶을 잘 보여준다.
파리잡이 유리병은 식당이나 가정집에서 파리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유리재질의 오목한 병으로, 전구까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당시 생활용품의 형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외에도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 한국 기독교인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보여줄 교육자료 및 다양한 서적류와 6․25전쟁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줄 수 있는 생활용품 등 100여 점의 공개되지 않은 소장품이 전시된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