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화가 박광택의 ‘산’

입력 2018-11-28 20:52
운보 김기창 화백의 계보를 잇고 있는 박광택 화백에게 ‘산’은 신비로운 존재이기도 하고, 그림의 원천을 제공하는 모태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도 바람 소리가 들리니?’(해드림출판사)라는 책 23쪽 ‘영혼의 울림’에서 “어떤 날은 문득 산으로 뛰어 올라가 산 속에 놓인 종을 힘껏 내려치고 싶어진다./저 옛날에 까치 떼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준 선비를 구렁이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동이 틀 때까지 깊은 산 속에 있는 종을 치고는 머리가 터져 죽었다는데 나는 누구를 위해 저 종을 칠까나./산이 거꾸러져도 좋으리. 땅이 솟아나도 좋으리./누군가를 위해 저 종을 칠 수만 있다면./그래서 내 몸이 저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나도 까치처럼 피를 쏟고 생을 마감한다 해도 정말 좋으리.//”라고 썼다.

그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 깊은 곳에 들어가면 아무도 청각장애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화가인 자신과 직면해 화폭에 온 세상을 담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그의 그림이 지리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것처럼 아련한 곳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지리산 깊은 곳에서 오랜시간 침묵하면서 얻은 정화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004년 그린 ‘영혼의 울림’(가로 91㎝, 세로 116㎝)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는 같은 책 25쪽에서 2005년 작 ‘자연의 침묵’(가로 53㎝, 세로 46㎝)에 대해 쓰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의 세계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문득 소리의 세계가 어떠한지 궁금해진다./내가 느끼는 고독의 깊이를 누가 잴 수 있으랴?/산꼭대기에 홀로 집 짓고 살다보면/그렇게 세울이 흐르다보면/어느 날 문득 바람 소리가 들리려나 소망해 본다./오늘도 나는 부질없는 그 소망으로/홀로 산을 오른다./여전히 한도 침묵하고 바람도 침묵하지만….”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박광택 화백의 그림에서 지리산을 볼 수 있다면 화가와 관객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