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빚투’의 이유…피해자들 “TV 보면 참을 수 없어”

입력 2018-11-28 15:06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휘인, 비, 마이크로닷, 도끼. 국민일보 DB, 뉴시스

래퍼 마이크로닷의 ‘부모 사기’ 논란에서 촉발된 연예계 ‘빚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가족사의 연좌제, 도의적 책임 사이에서 양론이 맞서고 있지만 특별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논쟁만 계속되고 있다. ‘빚투’는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에서 채무를 뜻하는 ‘빚’을 더한 합성어. 연예인 가족의 채무로 입은 피해를 고발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빚투는 마이크로닷에서 시작돼 도끼, 비, 마마무 멤버 휘인에 이어 배우 차예련으로까지 번졌다. 모두 연예계에서 자신들만의 매력을 뽐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다. 피해의 규모·시기·대상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들을 보는 피해자들의 ‘심리’다. 피해자들은 “TV를 보면 참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거대한 태풍의 시작

거대한 태풍은 채널A ‘도시어부’로부터 시작됐다. 래퍼 마이크로닷은 도시어부 출연을 통해 다수의 프로그램, 광고출연으로 보폭을 넓혀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마이크로닷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와 피해자들의 분노는 반비례했다.

이달초 마이크로닷의 ‘부모 사기’를 주장하는 글이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했다. 충북 제천에서 젖소 농장을 운영하던 마이크로닷의 아버지 A씨가 지인들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고 상당액의 돈을 빌린 뒤 1998년 돌연 잠적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0일 글을 올린 피해자 A씨는 “마이크로닷의 발언 또 그들의 부모가 얼굴을 내밀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생각나게 하는 이들이 방송에 보여 과거의 일을 생각나게 한다. 안 보고 싶다는 생각 그거 하나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마이크로닷은 지난 1월 도시어부에서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친척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어려운 살림에 한동안 수제비만 먹었다”고 말했다. 3월에는 부모와 같이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채널A '도시어부' 방송화면 캡쳐

“TV 보면 화난다” 피해자들 목소리가 같은 이유

마이크로닷 ‘부모 사기’ 논란 이후 도끼, 비, 휘인에 대한 빚투도 이어졌다. 빚투의 대상은 모두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연예인들이었고 피해자들의 폭로 이유는 비슷했다.

지난 26일 본인을 도끼 모친의 중학교 동창이라 소개한 B씨는 한 언론매체에 “돈을 빌려준 뒤 우리 가족은 단칸방에서 힘들게 살았는데 TV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난 일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쓰렸다”며 피해사실을 폭로했다.

가수 비 부모의 ‘빚투’를 제기한 피해자도 “사기로 번 돈으로 자신들은 떵떵거리면서 TV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억울함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평생을 살고 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했다.

가수 비. 오른쪽은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의 부모가 작성하고 돈을 빌려 갔다”는 주장과 함께 올라온 어음 사진. 비 인스타그램, 온라인 커뮤니티

그룹 마마무 멤버 휘인의 빚투를 주장한 피해자도 입을 맞춘 것처럼 같은 말을 했다. 바로 “사기꾼의 딸이라는 사람은 승승장구해서 채널을 돌릴 때마다 광고며 TV 프로그램 등 여러군데에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데 숨이 턱 막히고 손이 덜덜 떨린다”는 말이었다.

모범 사례로 재조명 받은 이병헌… 해답은?

연예계 빚투를 계기로 부친의 채무 10억원을 대신 갚은 배우 이병헌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이병헌은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 실패 후 세상을 떠난 부친의 빚 10억원을 떠안았다. 부친의 명예와 채권자들에 대한 도의를 지키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속을 포기하면 변제의 의무를 피할 수 있지만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 받는 연예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줬다.

배우 이병헌. 뉴시스

반면 나머지 빚투 사례는 대체로 여론의 뭇매로 이어졌다. 피해자와 팬들의 심리를 읽지 못한 해명 태도 때문이었다. 도끼의 경우 어머니 채무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26일 “1000만원은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되는 돈이다. 1000만원 빌린 것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걸 보니 가슴이 쓰렸다’고 하는 건 다 X소리”라고 해명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해명 직후 네티즌들은 도끼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빚투 논쟁의 명확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다. 다만 연예인들에게는 대중과 피해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 본인과 가족 구성원의 경계가 흐려진 탓에 연예인과 가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며 “연예인의 가족이 소셜미디어에 그릇된 발언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심하지 말고 매사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