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가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등교 준비도 느려서 학교와 학원에 매일 지각해요” “시험 때 아는 것도 삼분의 일은 못 풀고 와요”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시험에서 손해를 봐요” “공부한 것도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려요. 특히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을 못 외워요” “시험공부 계획도 세워보지만 용두사미 실천하는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L의 이야기이다. 이런 행동이 많다 보니 자주 야단만 맞게 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매우 바쁘다.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숙제, 시험 공부에도 구멍이 난다. 공부를 했다 하더라고 시험 시간에 다 풀지 못하고 삼분의 일은 백지이니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공부에 흥미도 점점 잃어간다. 학교나 학원에 지각하다 보니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왜 이럴까. 성격이 느긋해서? 아니면 엄마를 약 올리려고? 아니다. 기능적으로 말하면 ‘작업 기억력(working memory)’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한 아이의 문제는 서로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다. 작업 기억력의 부족에서 시작, 실타래처럼 줄줄이 연결되어 문제를 일으킨다.
작업 기억력은 무엇일까? 동시에 여러 정보를 기억하고 기억을 유지하면서 작업하는 능력이다. 이를 잘 유지해야 단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다음 단계에서 할 일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컴퓨터로 말하면 램(RAM)과 같은 기능이다. 컴퓨터의 기능과 정보처리 속도는 램의 기능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인간의 뇌도 작업 기억력이 좋아야 작업 속도와 기능이 좋다고 평가된다.
작업 기억력이 부족한 걸 어떻게 간단히 테스트 해 볼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것은 숫자나 단어를 불러주고 기억했다가 거꾸로 외우게 해보는 것이다. 또 수학문제를 불러주어 기억해서 문제의 의미를 파악하고 암산으로 문제 풀이를 해보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과제를 주고 해결을 잘하지 못한다면 작업 기억력의 문제로 L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이 정도가 심할 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order, ADHD), 또는 주의력 결핍 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 ADD)라고 한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는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먼저 간단한 일이라도 계획표를 가시화해서 순서대로 짜보도록 한다. 예를 들어 ‘등교 준비는 무엇부터 시작해서 각각 몇 시까지는 어떤 행동을 마친다’는 식으로. ‘8시30분까지 학교를 가야 하니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밥 먹고 8시에는 출발해야지,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니까’ 라는 식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당연하고 자동적인 계획 설정이 세워지지 않고 기억하지 못하므로 이를 ‘카드’로 만들어 눈에 띄는 곳곳에 붙여 놓는다. 등교 준비나 학원갈 준비를 할 때 등등. 공부나 놀이시간 등 하루 일과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부모와 함께 연습한다. 각 활동의 소요시간과 함께 반드시 ‘우선 순위’를 결정하게 한다. 공부를 할 때는 눈으로만 보면서 하지 말고, 시각 정보 뿐 아니라 청각 촉각 등의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 손으로 쓰면서 소리도 내고 이해한 것을 반복해 보게 한다.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되면 여행 가방 챙기기, 집안의 영수증 분류 등을 맡겨 조직화해서 일을 실행하는 경험을 가져 보게 한다.
이때 부모가 명심할 점은 이런 훈련은 아이의 현재 능력 수준에 맞게 쉬운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때까지는 어른들이 옆에서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맡겨 놓고 스스로 하기를 기대한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뿐만 아이라 아이와 부모가 좌절하여 더 힘들어 진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