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예능 프로그램 ‘도시어부’에 출연해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래퍼 마이크로닷(본명 신재호·25)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의 부모가 20여년 전 수십억원대 채무를 갚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 이민’을 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소속사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번복하고, 급기야 마이크로닷 어머니까지 나서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마이크로닷이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의 방송분을 편집하고 있고요. 며칠간 온라인을 달군 이 사건, 정리해봤습니다.
■ 논란의 시작
마이크로닷 부모의 ‘사기 후 도피’ 파문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이크로닷이 Mnet ‘쇼미더머니5’로 인기를 얻은 뒤 여러 방송에 종종 등장하고 있던 시기였지요. 점점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고, 출연 빈도도 잦아지자 마이크로닷 부모가 과거 20억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글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됐습니다. 글쓴이들은 자신이 피해자 가족이라고 주장했지요.
글은 대략 ‘우리 아버지와 마이크로닷 아버지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큰 피해를 입었다’ ‘마이크로닷 부모가 우리 가족에게 불행을 안겼다’ ‘수십명에게 수천만원을 빌려 도망갔다’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곧 더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소문이 퍼졌고, 조금씩 조금씩 의혹도 짙어졌습니다.
마이크로닷이 방송 활동을 점점 늘려가고 있던 때라 네티즌의 관심도 더욱 커졌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마이크로닷과 그의 친형인 가수 산체스(본명 신재민·32)의 소셜미디어(SNS)에 찾아가 댓글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제기된 의혹
그렇다면 피해자들의 주장은 무엇일까요?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마이크로닷 부모는 충북 제천 송학면 무도리에서 젖소 85마리를 키우는 낙농업자였습니다. 1998년 5월 어느 날 새벽, 마이크로닷 가족은 온 살림을 챙겨 뉴질랜드로 떠납니다.
문제는 이들을 믿고 정부 지원금 연대보증을 서 준 주민들이 있었다는 거지요. 마이크로닷 가족이 사라지자 이 빚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 됐습니다. 심지어 마이크로닷 어머니는 계원 15명과 한 달에 50만원씩 모으던 곗돈까지 가지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2000만원을 발려준 지인도 여럿 있었고요. 수천만원의 젖소 사료 외상값도 갚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피해자들은 당시 경찰에 접수했던 고소장까지 구체적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사건은 '피의자 소재 불명'이라는 이유로 기소 중지됐었다고 합니다.
■ 마이크로닷의 해명
논란이 커지자 마이크로닷 소속사 측은 지난 19일 “부모님께 확인한 결과 사실무근이다.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루 만인 20일 마이크로닷은 공식 사과문을 내고 “가장 먼저 저희 부모님과 관련된 일로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어제 최초 뉴스 기사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는 입장 발표로 두 번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하기도 했지요.
이어 “늦었지만 부모님께 피해를 입으셨다고 말씀하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드리겠다”며 자신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가족이 뉴질랜드에 이민 갈 당시 저는 다섯 살이었다. 어제 부모님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마이크로닷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요.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마이크로닷 측의 첫 번째 해명 이후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는 겁니다. 불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가 됐지요. 더 많은 네티즌이 이 의혹을 알게 됐고,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마이크로닷 부모’가 오르게 됐으니까요. 아울러 피해 증언도 속출했습니다.
■ 마이크로닷은 왜 비난받을까
마이크로닷 부모의 잘못일 뿐, 아들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마이크로닷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도 네티즌이 마이크로닷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마이크로닷의 해명에 피해자들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 피해자의 딸이라고 밝힌 A씨의 인터넷 글을 요약해 옮깁니다. A씨는 22일 포털사이트 네이트 판에 마이크로닷 형제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어릴 적 마이크로닷 형제와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고 했습니다.
“재호야(마이크로닷 본명) 기억이 없다면서 너랑 동갑인 아이가 ‘나랑 어릴 때 같이 논 거 기억해?’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왜 차단했니. 이번 추석 때 친척분들한테 부모님이랑 와서 살면 안 되냐고 물었고, 친척분이 정말 칼 맞을 수 있다고 하셨다는데 왜 그런지 이유는 안 물어봤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니니.
재호 이모님. 작년에 저희 어머니에게 연락해 ‘애가 TV에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거냐’고 물어보셨다면서요. 그리고 재호야. 한 분 한 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본다고? 전에 너한테 직접 연락하신 분도 있는 거로 아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애가 외국에서 활동하건 말건 한국에서는 보지 않는 거예요. 왜 우리가 계속 힘든 과거를 마주하게 하는 얼굴을 봐야 할까요.”
직접 마이크로닷을 찾아간 적이 있다는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 피해자의 경험담을 또 다른 피해자 B씨가 21일 충북 MBC 뉴스에 털어놨는데요. B씨는 “어떤 사람은 KBS 방송국으로 마이크로닷을 찾아갔다”며 “‘아버지가 나한테 빚을 졌다’고 얘기하니 ‘아버지가 진 빚을 왜 나한테 얘기하냐’고 했다더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로닷을 찾아간 피해자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 정말 알고 있었다면...
아직 마이크로닷 측은 피해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큰 비난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닷을 걱정하며 공식 입장을 기다려보자고 지적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만약 마이크로닷이 사기 논란의 전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 역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가 방송에서 한 행동과 발언 때문입니다.
“댓글을 전부 삭제했다… 계정도 차단. (피해자 가족)”
앞서 나온 A씨는 과거에 게시한 글에서 “산체스의 SNS 계정에 우리 가정의 피해 사실과 관련한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그런데 산체스가 이를 삭제했다. 이후 마이크로닷도 내 계정을 차단한 것으로 보아 형제가 예전부터 부모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마이크로닷 측에서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소속사의 이렇다 할 해명이 없다 보니 온라인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는 글입니다. 네티즌은 마이크로닷이 부모의 과거를 숨기려 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2년간 수제비만 먹었어요. (마이크로닷)”
마이크로닷은 지난 1월 도시어부 방송분에서 “뉴질랜드에 이민 가자마자 집 다섯 채 살 돈을 친척에게 사기당했다”며 “어려운 살림 때문에 한동안 수제비만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네티즌은 만약 마이크로닷 부모가 받는 의혹이 사실이고, 마이크로닷도 이를 알고 있었다면 매우 경솔한 발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부모가 여러 지인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힌 뒤 뉴질랜드로 떠났는데, 한때의 생활고를 토로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행동이라면서요. 도시어부팀은 지난 3월 뉴질랜드에 있는 마이크로닷 부모의 식당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네티즌은 마이크로닷 부모의 근황을 접한 피해자들의 심경이 좋지 못했을 것 같다며 걱정했습니다.
“아빠도 사장님. 작년에 10억의 매출을 확 넘겼네. (마이크로닷)”
마이크로닷이 쇼미더머니5 촬영 당시 래퍼 슈퍼비의 신곡 피처링에 참여하며 쓴 가사입니다. “그때는 수제비만 먹다 이제는 맛집만 찾아다니네. 엄마는 사장님. 운영하지 제일 핫한 한식 뷔페”라는 가사도 등장합니다. 도시어부에서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의혹이 사실일 경우, 신중하지 못한 가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방송활동에 ‘빨간불’
떠오르는 예능 샛별이었던 마이크로닷. 날보러와요와 도시어부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었지요. 방송 제작진 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마이크로닷의 하차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촬영분을 ‘통편집’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마이크로닷은 지난 20일 방송된 날보러와요에 편집 없이 등장했습니다. 앞서 프로그램 측은 이미 제작된 촬영분을 예정대로 방송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지요.
이틀의 시간이 더 있었기 때문일까요. 도시어부 측은 22일 방송분에서 마이크로닷이 등장하는 장면을 모두 편집했습니다. 촬영 예정이었던 제주도 특집편 녹화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5일 마이크로닷이 도시어부에서 하차 예정이라는 한 매체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21일 첫 방송된 올리브 ‘국경없는 포차’에서도 마이크로닷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른 출연진과 함께 전신샷이 찍히기는 했지만 단독으로 카메라에 포착되지는 않았지요. 마이크로닷은 원래 방송 초반이 아니라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제작진은 “일단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이크로닷과 공개 연애를 하고 있는 배우 홍수현도 덩달아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홍수현과 마이크로닷은 도시어부에 함께 출연해 친분을 쌓아오다가, 지난 7월 열애를 인정했지요. 일부 네티즌은 홍수현 SNS에 ‘마이크로닷과 헤어져라’ ‘마이크로닷을 설득해 공개 사과하게 해라’ 등의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신제품 모델로 마이크로닷을 선택한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헛’도 광고 영상을 급히 수정했습니다. 피자헛은 22일 유튜브 채널 등에 마이크로닷이 출연한 광고를 재편집해 공개했는데요. 마이크로닷이 등장하는 장면을 모두 광고 콘티(혹은 스토리보드)로 대체했습니다. 피자헛이 공개한 2편의 광고에는 ‘온에어 3일 전 모델 이슈로 불가피하게 모델 출연 분량을 삭제 후 재편집했다. 영상 흐름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문구도 등장합니다.
■ 마이크로닷 부모, 한국에 올까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충북 제천경찰서는 마이크로닷의 부모를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수배하기 위한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22일 밝혔습니다.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현재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신병 확보를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지요.
적색수배는 체포 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최고 수준의 국제 수배입니다. 따라서 약 180개의 인터폴 회원국에서 마이크로닷 부모의 신병이 확보될 경우 수배한 국가로 강제 압송되게 됩니다. 또한 뉴질랜드는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 형사사법공조를 맺고 있습니다.
경찰은 마이크로닷의 소속사를 통해 부모의 자진 출석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닷 어머니는 23일 “정확하게 조사를 받을 것이고 이를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고 스타뉴스에 말했는데요. 반면 경찰은 마이크로닷 부모 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천경찰서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마이크로닷 모친이 조사를 받겠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서만 확인했다. 연락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이크로닷은 ‘잠적설’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닷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보도가 다수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이크로닷의 한 지인은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마이크로닷은 한국에 있다. 모든 부분에 대해 조심스러워 한다”며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의 부모가 먼저 과거 일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20억은 아냐”
마이크로닷의 큰아버지 신현웅씨는 지난 23일 MBN ‘뉴스8’에 출연해 자신도 보증을 섰다가 2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고 털어놨는데요. 그는 “동생이 축사 2동에서 젖소 80여 마리를 키우던 농장을 정리하고 한밤중에 도주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형이니까 갚아달라”는 사람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회상한 신씨. 그러면서도 ‘20억원대 채무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신씨는 “서로 친하다고 차용증도 없이 100만원, 1000만원을 줬든 이런 상황이 와전돼서…”라고 했습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