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혼사에 재뿌리지 말라’ VS ‘엎드려 매맞으라’ 모텔 통째로 빌려 광주 조폭과 크게 한 판 뜨려던 수도권 조폭 중무장 경찰에 덜미.

입력 2018-11-25 09:50 수정 2018-11-25 14:29

“인천 K파와 B파가 주축인 20대 폭력조직원 30여명을 검거한다.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집단 투숙 중이니 방검복(防儉服)과 테이저건, 가스총, 삼단봉으로 무장하고 즉시 집결하라. 만일에 대비해 팀장급 이상은 실탄 장전한 권총을 휴대한다”.

초겨울의 한파가 찾아든 24일 낮 12시40분쯤 광주북부경찰서 강력반 등 형사과 소속 12개팀과 형사기동대,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 특공대 등 경찰관 100여명에게 비상 명령이 떨어졌다. 수도권 조폭들이 광주 폭력조직 S파와 한판 겨루기 위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특급 첩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를 막지 않는다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집단 난투극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질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문신을 한 인천 조폭들은 23일 밤 광주 상무지구 한 포장마차에서 전국 각지의 다른 조폭 조직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다. 20대 또래로 친목계를 하던 광주 한 조폭 가족의 24일 결혼식에 앞선 일종의 피로연이었다. 술자리에는 수도권뿐 아니라 영·호남 등 ‘주먹세계’를 대표하는 20대 신세대 조폭 30여명이 참석했다.

술잔이 10여 차례 연거푸 돌아갈 무렵 불콰해진 인천 조폭 노모(26)씨가 포장마차 종업원에게 “불친절하다”며 행패를 부렸다. 손님 접대 차원에서 동석한 광주 S파 1년 후배 김모(25)씨가 말리자 노씨는 언성을 더 높였다. 그는 “후배가 건방지다”며 김씨의 뺨을 세차게 때렸고 순식간에 술자리는 험악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참다못한 김씨와 S파 조직원들은 노씨를 끌고 나가 “남의 잔치에 와서 재를 뿌리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노씨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건 훈계성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결국 광주 S파 조직원들에게 되로 주고 말로 당한 꼴이 된 노씨는 “내일 보자”며 복수를 다짐했다. 직후 노씨는 “광주 애들에게 된통 당했다. 복수해야 한다”고 인천 K파와 B파 조직원들에게 SOS를 쳤다. 각화동 옛 광주교도소 부지 인근 모텔을 통째로 빌린 노씨 일행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직접 건물 내·외부 CCTV카메라를 떼내기도 했다. 노씨는 평소 우의를 다져온 동료 조직원들이 광주에 밤사이 내려오면 반드시 보복을 해주겠다고 벼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샌 후 노씨 등은 중재에 나선 광주S파 조직원을 볼모로 잡고 2시간동안 무릎을 꿇린 채 “김씨를 데려오지 않으면 땅에 묻어 죽여버리겠다. 대신 사과하고 땅에 엎드려 매를 맞으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하던 노씨가 꿈꾸던 복수는 좌절됐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결혼식 1시간 전인 24일 오후 2시쯤 중무장한 채 급습해 조직원 12명이 쇠고랑을 차게 된 것이다. 경찰의 낌새를 알아차린 조직원 20여명은 이미 모텔을 슬쩍 빠져나간 터였다.

방검복을 입고 방검장갑을 낀 채 중무장한 경찰은 모텔에 진입하는 검거팀과 외곽을 포위한 도주차단팀 등으로 역할을 나눠 전광석화와 같은 검거작전을 펼쳤다.

경찰은 일부 조폭들이 반항해 제압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노씨 등의 숙소에서 야구방망이와 쌍절곤 등 보복하는 데 사용하려던 다수의 폭력도구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5일 다른 조폭 조직원을 붙잡아 감금·폭행한 혐의(범죄 단체 조직·활동죄 등)로 노씨와 이모(23)씨 등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김규현 광주경찰청장은 “조직폭력배간 도심 활극을 막기 위해 선제적 검거작전을 펼쳤다”며 “조폭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공권력을 동원해 조폭들을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