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광역시장은 4억5000만원 뜯기고 현직 행정부시장은 역대급 ‘항명’에 갑작스런 명예퇴직 배수진을 치고...‘
초겨울의 한기가 엄습한 23일 광주광역시 주변이 온종일 어수선했다.
정책 발표 때나 혹은 관급행사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광역단체장과 행정부시장이 엉뚱한 화제의 초점으로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광주시청사 안팎을 먼저 술렁이게 한 것은 안과의사 출신으로 지난 6월말까지 광주시정을 4년 동안 책임졌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
윤 전 시장이 전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40대 여성 사기범 A(49)에게 4억5000만원을 송금해 금전적 손해를 봤다는 난데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권양숙입니다. 잘 지내시죠. 다름 아니라 딸 사업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5억원이 급히 필요하니 빌려주시면 곧 갚겠습니다’.
윤 전 시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문제의 여성이 돈을 빌려달라는 문자를 보내자 현직이던 지난해 12월부터 1월 사이에 4차례에 걸쳐 4억5000만원을 A씨 딸의 통장에 송금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최근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송금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친분을 쌓는 동안 권양숙 여사도 수차례 만났는데 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게 안타까워 급히 돈을 보낸 것입니다. 문자를 받고 전화통화를 직접 했는데 경상도 억양은 물론 목소리가 권 여사와 비슷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윤 전 시장은 진술과정에서 정치적 배경이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송금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윤 전 시장 외에도 유사한 수법으로 광주·전남지역 정치권 유력인사 20여명에게 사기행각을 벌이려다가 전남의 모 인사가 사기범이라고 직감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마각을 드러냈다.
놀라운 사실은 A씨가 권양숙 여사뿐 아니라 현직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까지 사칭해 일종의 보이스 피싱을 수십차례 시도했다는 점이다.
신고를 받은 전남경찰청은 휴대전화 번호를 추적해 전·현직 대통령 부인을 사칭한 A씨를 붙잡아 지난 11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후 은행계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윤 전 시장의 피해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결과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생계를 꾸리던 A씨는 남매를 둔 기혼녀로 과거 민주당 선거운동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습득한 자치단체장 등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수해 소위 ‘영부인’을 사칭한 사기행각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19일 윤 전 시장이 연루된 A씨 사기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윤 전 시장이 이례적으로 사기 피해를 당하는 과정에서 웬만한 광주시내 아파트 한 채 값이 넘는 돈을 뜯겼다는 비보가 잦아들 무렵 광주시청을 다시 격랑 속에 몰아넣은 것은 정종제 행정부시장의 메가톤급 명퇴발언이었다.
정 부시장이 총무과장의 항명을 두고 볼 수 없다며 격노하면서 ‘명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그는 이날 실국장과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조직개편 과정의 항명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의 기강잡기 수준을 넘어선 행정부시장의 전례없는 대노(大怒)에 실·국장들은 침묵 속에서 안절부절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정 부시장은 최근 단행된 민선 7기 두번째 조직개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가 공공연하게 꺾인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 3636명에서 3664명으로 정원을 늘리고 4실 6국 3본부 62과 체제를 4실 7국 3본부 67과로 현재보다 1국 5과 늘리는 것을 골자로 개편안을 짜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복이 돼야 할 총무과장이 오히려 행정부시장을 ‘패싱’했다는 것이다.
정 부시장은 자치행정국의 선임부서를 지원부서 성격의 총무과에서 분권시대에 맞는 자치행정과로 변경하는 게 시대적 흐름에 부합된다는 의견을 냈다.선임과도 종전 총무과에서 자치행정과로 변경해 업무 분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한 총무과장이 시장과 ‘독대’를 거쳐 거의 원점으로 개편안을 되돌리자 이를 납득하기 힘든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명퇴라는 폭탄선언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사권자인 이용섭 시장에게 이 같은 의사를 실제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 부시장은 이용섭 시장이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1년 가까이 비서실장으로 가까이에서 근무한 인연을 갖고 있다. 광주시청 주변 인사들은 느슨해진 조직기강을 잡는 차원의 경고성 발언을 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명퇴를 위한 수순이라기보다는 긴장감을 불어넣는 의도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 부시장이 최근 고향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퇴직하게 된다면 책을 쓰거나 강의를 다니게 될 것”이라며 “단체장 선거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속내를 비춘 것으로 전해져 발언배경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시정의 책임자인 시장에게 무한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총무과장에게 일방적으로 무게를 실어주기 이전에 내부조율을 거쳤어야 타당하다”고 뼈 있는 촌평을 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전직 광주광역시장은 4억5000만원 뜯기고 현직 행정부시장은 항명에 맞서 명퇴 배수진
입력 2018-11-23 20:17 수정 2018-11-23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