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 20년 ‘마음의 빚’ 갚았다, 사상 최대 규모 증여세 전망

입력 2018-11-24 05:00
최태원 회장 등 형제 경영진 4명이 지난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응원 도중 우승을 기원하는 ‘엄지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창원 부회장, 최신원 회장,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SK그룹 제공

최태원 SK 회장이 형제 등 친족 18명에게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 지분 329만주(4.68%)를 증여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친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166만주)을 비롯해 사촌형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가족(49만6808주),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주) 등 친족들에게 SK㈜ 주식 329만주를 증여키로 했다. 최 회장이 증여하는 주식의 가치는 9228억4500만원에 달한다.

올해 취임 20주년을 맞은 최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최근 가족 모임에서 주식 증여를 제안했다.

최신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먼저 친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하겠다는 뜻을 제안했다”면서 “SK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안정적인 그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선대 회장인 고 최종현 회장이 1998년 8월 26일 사망한 이후 SK그룹을 이끄는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최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타계한 직후 최종건 창업회장의 아들인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 등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최재원 등 5형제는 가족회의를 열고 최종현 회장의 모든 유산을 최태원 회장에게 상속키로 결정했다. SK그룹의 대표를 최태원 회장으로 하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5형제 중 맏형인 고 최윤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SK그룹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현재 닥친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최태원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최윤원 회장은 평소 최태원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당시 SK그룹의 사업지주회사였던 SK㈜ 회장에 취임해 그룹을 이끌었고, 최윤원 회장은 그룹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대주주 가족들의 구심점으로 단합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형제간에서 상속 문제가 불거지고 각자 지분을 나눴다면 오늘날의 SK그룹은 존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최태원 회장이 취임한 때는 외환위기 때로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았던 때다. 또 이후 터진 소버린 사태 때 경영권 방어에도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가족 모임에서 “지난 20년 동안 형제 경영진들이 하나가 돼 저를 성원하고 지지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SK그룹과 같은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증여로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 비율은 23.12%에서 18.44%로 줄어들게 된다. 다만 지분을 증여받은 친족들이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다면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율(30.88%)은 유지되는 셈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중심의 현 그룹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했던 SK그룹 계열 분리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나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SK그룹의 일부 계열사의 지분을 취득한 뒤 SK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는 계열 분리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증여세 납부까지 감안한 증여 규모를 고려하면 최신원 회장이나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SK그룹 내 특정 계열사의 지분을 대거 취득한 뒤 독립하는 계열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최신원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SK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됐고, 최종건∙최종현 형제의 형제간 책임경영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면서 “계열 분리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은 친족들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50% 안팎의 증여세를 부담할 경우 증여세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5000억원 안팎이 예상된다. 친족들은 증여받은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분납, 담보대출 등의 방식으로 증여세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